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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은숙 Mar 05. 2023

처음 출근하는 이에게

여전히 냉기가 감돌던 바람에 모처럼 온기가 실려오는 주말. 모처럼 쇼핑을 핑계로 온 가족이 합체가 되어 집을 나선다. 며칠 후 첫 출근을 하는 아들을 위한 쇼핑. 편하게 신을 수 있는 구두와 양복. 나선김에 눈길을 멎게 하는 봄옷 구경까지. 시원한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잔으로 멍한 정신을 깨우고 40여분을 달려 쇼핑몰에 도착했다. 환절기인 탓인지 사람이 제법 많다. 옷가게마다 무겁고 두꺼운 옷들은 어느새 뒷방 어르신처럼 밀려나고 가볍고 환한 옷들이 앞자리를 차지하고 반긴다. 아침에는 아직도 영하 기온이지만 한낮의 바람 끝을 떠올린다면 다음 주부터는 천천히 겨울옷 정리도 해야 할 듯하다.


먼저 구두가게로 들어선다. 정장용보다는 세미 정장에도 어울리는 편안한 신발을 찾는다. 그동안 운동화에 길들여져 있던 발도 한동안 적응하려면 고생해야 할 것이다. 그걸 염려해 최대한 젊은 감각이 묻어나면서도 불편하지 않은 디자인으로 낙점. 이어서 남성복 매장으로 이동한다. 색상은 튀지 않는 것으로, 나이에 걸맞게 심플하고 깔끔한 디자인으로 고른다. 옷을 입어보고 바지 기장을 세팅하는 동안 여유롭게 앉아 한눈을 판다. 옷은 보기 좋고 입었을 때 편안한 사이즈로 최종 결정했다. 


워킹화가 필요하다고 말한 남편은 아들에게 운동화 선물을 받고 기분이 좋아지고 시간은 벌써 오후 1시를 지나고 있다. 넷은 쇼핑도 역시 체력전임을 실감하며 서둘러 식당으로 향한다. 오늘 점심 메뉴는 화덕에 구운 생선구이. 문학기행을 갔던 곳에서 맛있게 먹은 기억 덕분에 지난 주말에도 찾았던 식당. 오늘은 상호명은 같은 다른 체인점이다. 점심시간인 덕분인지 식당이 북적하다. 잠시 대기하다 자리를 배정받고 삼치와 고등어구이와 조림, 불고기볶음까지 먹고 싶은 메뉴대로 다양하게 주문한다. 기본 반찬에 즉석에서 만들어지는 계란말이와 잡채, 두부조림까지 고픈 배 덕분에 젓가락질이 빨라진다. 어느새 먹음직스럽게 갓 구워진 생선구이까지 도착. 맛있다란 말을 연발하며 밥을 먹고 뜨끈한 누룽지로 식사를 마무리한다.


아이들이 자라면서 온 가족이 합체가 되어 외출하는 횟수는 자연스레 줄어들었다. 생일 같은 기념일이 아니면 함께 외식을 하는 일도 드물다. 웬만하면 집에서 배달시키고 옷 구입도 인터넷 매장을 많이 이용한다. 학교 때문에 외지에서 생활하던 아이가 취업과 더불어 집으로 다시 오면서 당분간은 합체할 날이 늘어날듯하다. 하지만 이 또한 엄마와 아빠의 바람일 뿐. 학교라는 울타리를 벗어나 새롭게 사회생활을 하게 될 그에게 많은 것은 기대하지 않기로 한다. 그 또한 나름대로 생활 영역과 방식이 있고 어릴 적 늘 부모의 손길이 필요하던 자식이 아니기 때문이다.  가끔 아직도 어리게만 느껴지는 아이에게 엄마가 이렇게 저렇게 해줄까 무심코  말할 때가 있는데 그때마다 아이는 화들짝 놀라며 자신의 나이를 재확인시켜주곤 한다. 이제 우리가 할 일은 잘할 수 있도록 무한 응원을 보내주고 힘들 때 가끔 힘이 되어주는 것이다.


늘 혼자 잘 알아서 한다고 믿었던 탓에 스스로 도움을 요청하기 전에는 먼저 손을 내민 적이 없다. 그때마다 이제 다 컸구나라고 여겼는데 새로운 곳에서 적응을 해야 하는 '첫 출근'은 불안과 긴장을 동반하는 듯하다. 어쩌면 평생직장이 될 곳이기에 부담은 더욱 클 것이다. 부모인 내가 옆에서 할 수 있는 일은 사회생활의 경험치를 공유하거나 따듯하게 격려를 해주는 것뿐. 미미하지만 작은 도움이 되기를 바랄 뿐이다. 


얼마 전 필사했던 고두현 시인의 <처음 출근하는 이에게> 시구가 떠오른다. 잊지 말라 / 지금 네가 열고 들어온 문이/ 한때는 다 벽이었다는 걸/ 쉽게 열리는 문은 / 쉽게 닫히는 법/ 들어올 땐 좁지만 / 나갈 땐 넓은 거란다/ 집도 사람도 생각의 그릇만큼 / 넓어지고 깊어지느니/ 처음 문을 열 때의 그 떨림으로 / 늘 네 집의 창문을 넓혀라/ (중략) 노력하고 고생한 만큼 그의 '첫 출근'이 따듯하고 설렘 가득한 시간으로 기억되기를 기도하는 아침. 오늘은 새 출발을 응원하는 마음으로 그가 좋아하는 '엄마표 김치김밥'을 싸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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