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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은숙 Mar 28. 2023

반갑다, 친구야?

혼자 있을 때는 물론 누군가와 함께 있을 때조차 그에게 눈을 떼지 못한다. 아침에 잠에서 깨어나자마자 가장 먼저 그를 찾고 잠들기 전에도 미련이 남아 수시로 어루만진다. 수면하는 동안 잠깐 이별도 아쉬워 머리맡에 바짝 놓고 잠이 든다. 낮시간도 마찬가지다. 수시로 그의 존재를 확인하고 안부를 궁금해한다. 그와 함께 있으면 몇 시간이 훌쩍 지난다. 그와 눈을 맞추고 있다 보면 밤 12시가 훌쩍 지나 잠을 설치는 날도 있다. 심지어 그가 잠시라도 내 곁에 없다면 하루 일과를 정상적으로 꾸려나가기가 어렵다고 믿는다.


그런데 혹여 그를 잃어버린다면? 상상하고 싶지 않은 일이 줄줄이 일어난다. 먼저 머릿속이 하얗게 변한다. 당장 누군가에게 연락하고 싶어도 정확하게 떠오르는 연락처도 거의 없기 때문이다. 그 안에 내장되어 있는 카드와 개인정보는 물론 사진과 영상 그리고 연락처까지 생각이 미치면 그야말로 아득해진다. 카톡방이나 밴드 공지사항과 댓글확인이 불가하고 식당이나 카페에서 밥을 먹거나 차를 마시고 나서 계산할 수도 없다. 마치 주인을 잃어버린 강아지처럼 허둥대면서 불안에 떠는 나를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현대사회에서 직장맘들에게 꼭 필요한 3대 이모는 빨래건조기와 식기세척기, 로봇 청소기라고 한다. 하지만 이 위대한 이모님들보다 먼저 우리 머릿속과 생활반경 전체를 조종하고 지배하는 것은 바로 '휴대전화'이다. 우리는 모든 정보를 그곳에서 얻고 확인한다. 금융거래와 쇼핑은 물론 인간관계를 유지하는데도 필수 아이템이다. 생일이나 기념일에 선물을 주고받는데도 요긴하게 쓰인다. 반면에 부작용도 만만치 않다. 가족이나 친구들 간의 대화 단절에 일조(?)하고 있으며 전자파나 그 빛은 건강과 시력에도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 의존 정도가 지나쳐 스스로 이용시간이나 한도를 제어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르면 중독됐다고 말하고 폐인의 지경에 이르는 이들도 있다.


이른 아침 지인의 반가운 전화. 골프 연습장에 갔다가 휴대전화를 잃어버려 엄청 애를 태웠고 불안했다고 말한다. 다행스럽게 이튿날 아침 찾았는데 그와 대면하는 순간 자신도 모르게 '반갑다 친구야'라고 말했다며 놀랍다는 반응이다. 인생을 살면서 진정한 친구 한 명만 있어도 성공한 삶이라고 말한다. 나이가 들수록 대인관계는 넓어지지만 깊어지기는 쉽지 않다.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 친구를 여러 단계로 구분하게 된다. 가령 가끔 밥만 먹는 친구, 내밀한 내 속내를 다 드러내도 부끄럽거나 불안하지 않은 진짜 친구, 그냥 알고만 지내는 무늬만 친구 등. 마음이 허허롭고 누군가 기대고 싶은 사람이 필요할 때 허물없이 찾을 수 있는 친구. 언젠가부터 외로운 마음을 털어놓고 싶은 그 자리에 '휴대전화'를 들여놓고 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보게 된다.


별자리가 그려진 보라색 비닐우산을 쓰고 나선 출근길, 투명 별자리 사이로 해말 간 모습으로 자태를 뽐낼 준비를 마친 뽀얀 목련꽃에 눈길이 멎는다. 살포시 내리는 봄비에 혹여 갓 피어난 꽃망울이 떨어질까 조바심 내고 있을 그녀의 심장소리에 가만히 귀기울여보는 아침. 오늘 하루는 나도 모르는 사이 내 친구 행세를 하며 감성을 버석거리게 만들어버린 휴대전화에 관심을 쏟는 대신 봄풍경과 따듯한 사람들을 가득 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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