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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은숙 Apr 27. 2023

술을 마시면 달라질까

모처럼 지인과 이뤄진 저녁자리. 주메뉴는 오리누룽지백숙. 옆 좌석에서 오리다리 한쪽을 들고 열심히 살을 발라드시는 할머니와 발그레한 얼굴로 부지런히 젓가락을 움직이고 있는 아들의 모습이 정겹다. 일행들은 자리에 앉자마자 빈속에 마시는 짜르 한 술맛이 제맛이라며 안주가 나오기 전에 급하게 첫 잔을 들이켠다. 옆자리에 앉은 지인이 내게도 술을 권한다. 익숙한 표정으로 "저, 술 끊은 지 3년 됐어요"라고 말하며 물 잔을 내민다. 그럼에도 그는 "술도 좀 마셔야 삶에 여백이라는 게 생기고 글도 더 잘 써집니다"라고 강조하며 기어이 소주잔을 채워준다.


글쓰기에 관심을 가졌을 때 시 창작법을 다룬 책에서 "시를 쓰고 싶으면 시집 200권을 읽어라. 그리고 술을 마셔라"는 글을 읽은 적이 있다. 전자는 물론 인정하지만 후자는 정말일까 궁금했던 대목. 주옥같은 시나 유명한 소설을 쓴 작가들 중에도 술을 사랑한 이들이 제법 많은 걸 보면 아주 틀린 말은 아닌 듯하다. 여백 없이 치밀하고 이성적인 순간만 계속된다면 글쓰기 특히 시를 쓰기는 더 어려울지도 모르겠다는 데는 고민 없이 동의한 표. 하지만 어쩌란 말인가. 태생이 술이 받질 않아 한 모금만 마셔도 얼굴이 붉어지고 조금 더 마시면 졸음이 쏟아지는 체질을 갖고 있으니. 더구나 병원에서 금주령까지 진단받은 전력이 있으니 선택의 여지가 없다.


글쓰기와 관계없이 사회생활을 하면서 술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이들이 많다. 나 또한 업무상 술을 꼭 마셔야 한다고 여기는 직무를 맡았을 때 상사와 가끔 불편했던 기억이 있다. 그들은 서운한 일이 있거나 말로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들도 술을 같이 마시면서 대화를 하다 보면 자연스레 풀 수 있다고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이성만으로는 풀어내기 어려운 상황도 술이 있다면 가능하다고 말이다. 하지만 '술'로 인한 폐해도 만만치 않다. 마시지 못하는데 억지로 마시는 일은 당연히 고역이고 고통이다. 술을 즐기는 사람들과 맨 정신으로 3~4시간을 마주 앉아 대화하는 일 또한 쉽지 않다. 더구나 술이 과하게 오가는 자리에서 최종적으로 주고받은 대화 내용을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는 사람은 모임 내내 물을 마시며 앉아 있던 1인 뿐이라는 사실에 당황스러웠던 순간도 있다. 음주로 인한 사건사고는 언급할 필요도 없을 정도로 숱하다.


술과 전혀 인연이 없다고 믿고 사는 나 또한 술을 마신 때가 있다. 그래봐야 소주 몇 잔에 불과하지만. 순전히 사람이 좋아서 어울렸고 약간 취기가 올라왔을 때 상태를 즐겼던 것 같다. 하지만 음주 후 겪게 되는 고통과 예상되는 부작용 때문에 거의 마시지 않는 날이 많았고 아예 금주하기 시작한 것도 3년째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맡게 되는 임무는 소위 '운전병'이다. 어딜 가나 운전수는 필요하고 술자리가 파한 늦은 시간, 집에 무사히 돌아가야 하니 어쩌면 꼭 필요한 존재이다.  


오늘도 내 임무는 선택의 여지없이 '운전병'. 두어 시간 동안 소주대신 물로 잔을 채우고 소주 각 2병에도 흐트러지지 않는 그들과 즐겁게 대화를 나누며 꿋꿋이 시간을 채웠다. 그리고 그들이 원하는 목적지까지 안전하게 데려다주는 임무도 무사히 마쳤다. 일상을 글로 풀어내고 기록하는 일이 대단한 일이라고 치켜세워주며 글을 더 잘 쓰고 싶다면 '술'을 마셔보라고 은근히 권했던 그의 말을 곱씹어보는 밤. 만약에 술을 마시면 내 글쓰기가 달라질까 조금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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