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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은숙 May 01. 2023

더 바랄 것이 없는 삶?

행복의 기준

"오늘 일하면서 자네 생각을 했어. 내가 보기에 이상적인 삶을 살고 있는 것 같아"

주말 지역에서 개최되는 음악회에 갔다가 우연히 마주친 은사님께 이런 당황스러운 말을 들었다. 

"설마, 제가요....."라는 대답에 이유를 자세하게 말씀하신다. 직장이며 취미활동이며 두루두루... 

전혀 아닌 게 분명한데.. "더 바랄 것이 없지 않아?"라는 말로 방점을 찍으신다.

구구절절하게 설명하기도 어려운 터라 이내 "그렇죠"라고 답하고 돌아섰다.

더 바랄 것이 없는 이상적인 삶이라니. 얼토당토 한 말이다. 지금 이 순간도 오랫동안 바라던 일이

삐그덕 해서 멘털이 흔들리는 중이고 고개를 조금만 돌려도 걱정거리가 서너 개는 너끈하다. 아닌 척 하지만 늘 작은 일에도 소심덩어리의 삶을 살고 있다. 은사님이 이런 말을 하더라고 했더니 남의 편 님은 한술 더 뜬다. 시어머니와 시댁과의 관계까지 언급하며 걱정거리 하나도 없지 않냐며 적극 동의하는 것이다.


알고 보면 팔 수록 걱정거리가 나오는데 남들은 늘 세상 편해 보인다고 말한다. 내 고민을 누군가 해결해 줄일 도 없으니 걱정거리 많고 힘들어 보인다는 말보다는 낫다 싶지만 신기할 뿐이다. 늘 웃고 다녀서 그런 건지, 웬만하면 좋은 게 좋다고 손해 보며 살아서인지도 모르겠다.


사람들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삶의 기준이 새삼 알고 싶어 진다. 얼마 전 읽었던 단편 소설 내용이 떠오른다. 주인공 그녀의 삶은 안정적이고 여유롭다. 평생 그녀를 사랑하는 남편은 기본이고 자식들 또한 소위 명문대를 졸업했고 사회적으로 성공했고 거기다 효자 효녀이기도 하다. 그런데 그 글을 읽는 내내 불편함이 가득 들어찼다. 부러우면 지는 거라는데 소설임에도 불구하고 정말 그런 사람이 있을까 의문을 제기하며 현재 나의 삶과 비교하면서 몰입해서 읽었다는 증거이다.


아이들을 키우면서 늘 강조했던 것은 한 가지였다. "공부는 잘 못해도 되는데 싸가지는 있어야 한다"

성적이 떨어져도 크게 혼낸 기억은 없고 어른에게 인사하는 일부터 사람의 도리가 더 중요하다고 가르쳤다. 그 덕분인지 둘 다 큰 말썽 없이 잘 자랐지만 소위 말하는 명문대에 못 들어갔고 평범하게 자랐다. 가끔은 좀 더 강하게 다그쳤다면 아이들의 삶이 좀 더 나아졌을까 후회할 때도 있다. 하지만 다 자기 그릇 크기가 있을 터 그 또한 억지로 해서 될 일은 아니었다고 자위할 뿐이다.


인공지능 챗 GPT는 '행복'에 대한 질문에 "행복은 다차원 구조이며, 누군가에겐 행복한 일이 다른 사람에겐 똑같지 않을 수도 있음을 유념해야 한다. 행복은 종착역이 아니라 여정이며 그렇기 때문에 이를 가꾸고 유지하기 위해서는 의도적으로 노력하고 자기반성이 필요할 수도 있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라고 답한다. 읽어보면 조목조목 맞는 말이다. 사람마다 잣대가 다르고 이를 이루기 위해서는 일정의 노력이 필요하다는 답변이다. 누군가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명품을 두르고 소위 말하는 명예와 권력을 그 기준으로 삼기도 하고 소소한 작은 일상 속에서도 항상 웃으며 하루를 채워가기도 한다. 


 '더 바랄 것이 없는 삶'을 살고 있어 보이는 내 삶. 이는 아마도 행복한 삶을 살고 있다는 말과 다름 아닐 것이다. 보기와는 달리 미래 어느 시점의 행복을 담보로 현재 누릴 수 있는 일상들을 힘겹게 채우고 있는 것은 아닌지, 정말 잘 살고 있는지 들여다보는 날이다. 나는 정말 잘 살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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