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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은숙 May 02. 2023

작은 기도

평소보다 조금 여유롭게 아침을 먹고 집을 나섭니다. 출근을 안 하면 이내 마음에 풍선 하나가 떠다닙니다. 기분 좋은 일이 없어도 그냥 발걸음이 가벼워집니다. 어깨에 찬 견장도 등에 습관적으로 짊어지고 다니던 무거운 짐도 내려놓습니다.


모처럼 맑은 하늘에 눈을 맞추고 삐그덕 대며 자꾸 엇나가는 못난 마음조각도 가지런히 매만집니다. 기차역 매점에서 좋아하는 따끈한 만쥬도 한 봉지 사서 들고 시원한 아메리카노 한잔도 주문합니다. 햇살은 따사롭고 청청한 바람결이 등을 토닥여주니 저절로 가슴이 온순해지는 기분입니다.


오랜만에 엄마 일정에 수행자로 따라나선 딸은 오늘 할 일을 꼼꼼히 확인합니다. 때론 까칠한 고슴도치 같지만 알고 보면 봄빛처럼 속정이 깊은 그녀입니다. 아마 오늘도 내내 철부지에 길치인 엄마를 지켜내느라 식은땀을 흘릴 테지요.

  

사월은 어쩌다 놓치고 오월도 얼떨결에 맞았습니다. 사는 게 뭐 그리 바쁜지 잠깐 한눈팔 시간도 아깝다고 여기며 동동거리며 삽니다. "인생이란 무엇일까요" 새엄마에게 물었던 몽실이의 서러운 눈빛이 떠오릅니다.

이 봄 나를 아는 모든 이들 아니 살아있는 모든 것들에게 평안이 깃들기를. 손톱달만큼 좀스럽고 모자란 제 마음에도 부드러운 햇살 한 줌 스며들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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