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은숙 May 19. 2023

더 담대하게, 더 용감하게

그 시절을 떠올리면 사 남매는 많은 형제도 아니다. 띄엄띄엄 터울도 많이 난다. 덕분에 서로 다툼도 별로 없이 자랐다. 고만고만해야 싸움이 되는데 최소 4년부터 막내와는 12년 차이가 나는 덕분이다. 같은 뱃속에서 나왔지만 여느 집과 마찬가지로 성격도 제각각이다. 나는 첫째라는 프리미엄 덕분에 크고 작은 혜택을 누린 탓인지 지금도 철부지 막내처럼 군다. 반면에 여동생들은 꼼꼼하게 가족을 잘 챙겨주고 특히 엄마에 대한 배려심도 남다르다. 남동생은 묵묵하고 성실하게 제 할 일을 멋지게 해낸다.


얼마 전 진급발표가 났을 때 엄마는 세상을 다 얻은 듯 기뻐하시며 연신 눈물을 흘리셨다. 지인들의 이어지는 축하에 내가 승진한 것 같다며 행복해하셨다. "잘 키워준 엄마 덕분"이라는 평범한 한마디 말에 감동스럽다며 즐거워하셨다. 지난번 인사에 미역국을 먹었을 때는 혹시 딸이 맘 상했을까 눈치를 보며 조용히 용기를 북돋아주셨었다. 당신도 서운하셨을 텐데 속상한 딸의 마음을 먼저 떠올렸을 그녀의 마음이 그림처럼 그려진다.


열 달 품어 내 속으로 낳은 자식이지만 내 맘 같지 않은 날이 많다. 청개구리 정도는 아니지만 "이렇게 했으면 좋겠다"는 말을 귓등으로 흘려버리기도 하고 항상 멋진 모습으로 곁에 있길 바라지만 아닌 날도 있다. 그럴 때마다 속상하지만 제때 피어나지 못한다 해도 그 또한 내가 품어야 할 손가락이다. 때론 밤잠 설치며 생각을 거듭한다. 그 또한 내 잣대로 판단하기 때문에 당사자에게는 도움이 안 되는 쓸데없는 해결책이 대부분이다. 요즘 들어 그동안 잘 못한 일들만 자꾸 떠오른다. 좀 더 품어주고 따스한 눈길로 이끌어주었다면 좋았을 텐데. 왜 그때는 그것을 몰랐을까. 이 시점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이 있을까 끊임없이 되새김질하는 것이다.


요즘 아침 낭독으로 "예쁘게 말하는 네가 좋다'는 책을 읽고 있다. 다 아는 내용인 듯 하지만 읽을 때마다 나도 모르게 무릎을 치게 된다. 그동안 생각 없이 건넸던 말들을 떠올리면 눈앞이 아득해진다. 칭찬이라고 건넸던 말이 상대방 입장에서는 평가당하는 단어였고, 분위기 전환을 위해 무심코 던졌던 농담이 알고 보면 그의 마음에 생채기가 되었음도 깨닫는다. 한번 내뱉으면 주워 담을 수 없음을 알면서도 어느새 허공에 흩어지는 미운 말들의 행렬.


본인 맘이 더 아프고 상했을 텐데 "나 때문에 잠 못 자거나 속상해하지 말라"는 작은 목소리가 오래도록 화인처럼 새겨진다. 아마도 그녀는 밤새 뒤척거리며 잠을 설쳤을 것이다. 어쩌면 모든 것이 본인 잘못이라 여기며 자책하는 시간으로 채웠을 것이 분명하다. 섬세하고 사리 분별 또한 또렷한 그녀. 생각이 너무 많고 깊어 어려움을 겪기도 하며 애태우는 그녀. 속정이 깊어 본인보다 가족들을 위해 많은 배려를 아끼지 않는 그녀에게 여느 때보다 더  진한 응원의 마음을 보낸다. 그동안 희미했던 시간들의 무게를 툭툭 털어내고 세상 속으로 더 담대하고 더 용감하게 자박자박 걸어 들어가기를 기도한다. 


그녀의 맘과 다르게 때론 비탈길이나 자갈길을 걸었던 시간들이 아스라이 머릿속을 가득 채운다. 그때마다 한 번도 화를 내거나 성급하게 몰아부치지 않고 있는 그 자체를 인정해 주고 기다려준 그녀의 마음. 채근하는 표정이나 말로 몰아붙였다면 얼마나 불안하고 조급했을까. 나 또한 잘 해낼 거라 믿으며 지켜봐 준 묵묵한 응원 덕분에 지금까지 잘 견디며 버텨왔으리라. 이제 내 차례다. 대가를 바라는 마음 없이 무한애정으로 믿어주었던 그 내리사랑과 무한 신뢰로 보듬어 주고 싶다. 겁내지 않고 자박자박 걸어 나갈 수 있도록.






작가의 이전글 다 잘될 거예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