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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은숙 Mar 15. 2024

건강하게 살아가는데 꼭 필요한 것

망각과 기억 

일상에 늘 무심하다고 믿으며 산다. 어제 일도 금세 잊어버리는 날이 많고 머리 아픈 일들도 오래 담아두지 못하는 편이다. 말 그대로 단순하다는 표현이 적확하다. 누군가 말을 하면 되짚거나 곱씹는 절차 없이 그대로 믿는 성향이다. 덕분에 10여 년 넘게 시어머니와 동거했지만 커다란 트러블도 없었다. 말씀하시는 대로 듣고 믿다 보니 오해할 일도 별로 없다. 머리 아플 일도 생기지 않는다. 직장에서도 마찬가지다. '카더라'통신을 통해 잡다한 소식들을 접하면 그런가 보다 하고 여길 뿐 여러 번 생각하거나 기억하려고 애쓰지 않는다. 


사달이 난 것은 일주일 전쯤이다. 6개월마다 받는 정기검진을 까먹은 것이 생각나 토요일 아침 일찍 인근 병원을 찾았다. 오전 8시부터 진료시작인데 20여분 지났을 뿐인데 벌써 대기번호 55번. 한참을 기다려 검진을 받기 전에 혈압을 쟀다. 평소에도 고혈압은 아닌지라 평온한 마음으로 시작 버튼을 눌렀는데 수치는 저혈압에 해당했다. 최고 혈압이 90에도 못 미치고 최저혈압도 간신이 50을 넘고 있었던 것. 간호사도 수치가 너무 낮다며 시간차를 두고 압축기를 이용해 다시 쟀지만 오히려 더 낮은 결과가 나왔다. 압축기로 잰 혈압이 더 정확하다는 말을 듣고 나자 그때부터 머릿속은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요즘 가끔 어지럼증이 났던 것도 눈에 띄게 더 피곤했던 이유는 바로 이것이구나 단정하고 인터넷으로 저혈압 증상과 몸에 좋은 음식을 찾아보면서 더 몰입도가 심해졌다. 심지어 최근 유난히 더 저질체력을 증명하던 모든 이유의 단초를 거기서 찾기 시작한 것이다. 한술 더 떠 퇴근 후에는 밥을 하려다가도 갑자기 어지러운 것 같다며 배달 음식을 주문했고 어지럼증과 뒷목이 은근히 묵직하게 느껴지는 증상도 더 심해지기에 이르렀다.


  인간이 신에게 받은 가장 큰 선물 중의 하나는 '망각'이 아닐까 싶다. 가끔은 너무 잊고 살아서 아쉬운 순간도 있지만 하나에서 열까지 모든 일들을 기억하고 산다면 아마 작은 머릿속은 금세 포화상태가 되고 어느 순간 미쳐버리는 지경에 이르고 말 것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즐겁고 행복한 일이 아니라서 지우개로 흔적도 없이 지워버리고 싶어 한순간이라도 빨리 잊고 싶은 사건사고가 있다면 더 말할 것도 없다. 어쩌다 불현듯 떠올라도 가슴이 훵해지거나 찌릿해져 억지로라도 잊고 싶은 기억들이 숱하게 많다. 누군가에게서 뜻하지 않은 모멸감을 느꼈던 순간, 떠올리고 싶지 않을 만큼 아프고 슬펐던 상처와 시련의 순간들까지. 


철학자 니체는 망각은 '강한 건강의 한 형식'이라고도 정의했다. '가장 작은 행복에서나 가장 큰 행복에서도 행복을 행복으로 만드는 것이 바로 잊을 수 있다는 것'이라고. 그에 따르면 초인이 되기 위해서는 아이처럼 '망각할 수 있는 힘'이 필요하다. 결국 망각과 행복은 정비례관계라 할 수 있으며 결론적으로 망각과 기억은 건강하고 좋은 삶을 살기 위해 꼭 필요한 도구로 조화와 균형을 이루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말 그대로 제때 잊을 줄 알아야 하고 제때 기억할 줄 알아야 행복한 삶 그리고 건강한 삶을 살 수 있다고 강조한다. 지금도 중요도에 관계없이 너무 망각의 정도가 심한 삶을 살고 있다고 믿지만 두말할 나위 없이 그의 이론에 반갑게 찬성 한 표를 던진다. 특히 신체는 물론 정신 건강을 위해 꼭 필요한 항목이라고 믿는 까닭이다. 


검진 이후 여전히 뒷목의 묵직한 느낌과 어지럼증을 껴안은 채 일상이 이어지고 있다. 지금 이 순간부터는 그냥 일반인들보다 혈압이 조금 낮기는 하지만 커다란 불편이 없다고 믿었던 시간들로 기억은 되돌리고 정상보다 한참 낮은 수치는 망각해야겠다고 마음먹는다. 이 일을 계기로 조금 더 건강하게 먹고 활력을 주는 생활습관들을 실천하려고 애쓰면 해결되는 일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소한 일을 포함해 만약 순간순간 삶의 문턱에서 지난 과거를 잊지 못하고 후회와 두려움의 순간에 멈춰있다면 망각을 배우고 과거에 집착하고 매달려있는 자신과 하루라도 빨리 결별해야 한다. 어느 순간 감정의 쓰레기장이 된 불행으로 가득 찬 비참한 자신을 만나고 싶지 않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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