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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은숙 Aug 01. 2022

구부러진 길

늦은 시작은 없다

근무시간에는 동료들과 사적인 이야기를 할 시간이 별로 없다. 더구나 신규 직원들의 경우는 사생활에 관심 갖는 것 자체를 부담스러워한다는 말에 웬만하면 알려고 하지 않고 구태여 묻지도 않는 편이다. 그나마 출장을 같이 가게 되면 이동하는 동안 차 안에서 자연스럽게 업무 외에 개인적인 이야기를 하는 정도. 얼마 전 같은 부서로 발령받은 직원은 30대 중반이다. 나이에 비해 근무경력이 짧은 이유를 물었더니 대학을 두 번 다녔다고 한다. 풍문으로 들리는 유형도 다양하다. 대학에 다니다 휴학하고 취업준비를 했는데 시험에 합격해 비교적 어린 나이에 입사하기도 하고 다른 직장에 다니다가 적성에 잘 안 맞아 선회한 경우도 있다. 대학 때부터 오랫동안 다른 길을 준비했지만 매번 고배를 마시다 고심 끝에 늦깎이로 입사한 사례까지. 후자의 이야기는 그동안 그들이 겪었을 고충이 짐작되어 안쓰럽지만 잘 적응하는 모습을 보면 다행스럽다.


 실력과 인성, 글쓰기와 언변까지 모든 방면에서 완벽을 요구하는 시대. 취준생들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70년대생인 것이 다행스러울 정도다. 게다가 내 실력으로는 요즘에 취업이 가능할까 하는 생각에 이르면 나도 모르게 어깨가 움츠러든다. 비교적 쉽게 취업에 성공한 이들도 있겠지만 그들은 아주 극소수일 뿐 대다수를 차지하는 오랜 취준생들이 견뎌냈을 시간. 가족 또는 타인들은 혹시 그들의 노력이 부족했던 것은 아닐까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보기도 하지만 그들은 자신의 방식대로 최선을 다했으며 다하고 있을 것이다. 취업 준비를 하면서 가족 모임에도 자꾸 빠진다는 동료의 아들 이야기. 부모가 말을 안 하면 자식의 대학, 취업, 결혼 이야기는 절대 먼저 물어보지 말라는 말이 어느새 꼭 지켜야 할 불문율이 된 시대. 자랑할 일이 있으면 묻지 않아도 먼저 말을 할 테니 묻지 말라는 것이고, 대답이 곤궁해 난처할 입장을 배려해 알려고 하지 말라는 것이다. 


급여명세서의 의료보험료 적정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계산기를 두드리고 단톡방을 개설해 정보를 공유한다는 이야기는 어쩌면 모래바람이 부는 사지에서 그들이 살아내기 위한 작은 몸부림일 것이다. 그들은 결코 조직에 잘 적응하지 못하는 부적응자도 까칠한 종족도 아니다. 그저 주어진 환경에서 잘 살아내고 싶어 아니 잘 견뎌내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을 뿐이다.  우리의 삶이 늘 구부러진 길보다는 직진 코스, 울퉁불퉁한 길보다는 평탄한 길이었으면 좋겠지만 그것이 어렵다면 나와 그들이 돌고 돌아 도착한 이곳이 환한 꽃자리가 되었으면 좋겠다. 우리 삶에 늦은 시작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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