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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은숙 Jul 31. 2022

밥을 산다는 말

엄마와 꼬막비빔밥 

코로나19가 2년여 넘게 지속되면서 집에 머무는 시간이 늘어났다. 처음에는 겁이 나서 집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지만 기간이 길어지면서 그 시간을 엄마에게 할애하기 시작했다. 그냥 밥을 먹고 차를 마시고 특별할 것도 없는 일정이었지만 큰딸은 늘 바쁜 사람으로 여겼던 엄마는 그 소소한 시간들을 무척 좋아하셨다. 어쩌다 함께 외출하는 날, 동네 친구분들에게 전화라도 걸려오면 "나 지금 큰딸이랑 밥 먹으러 가"라고 큰소리로 통화하며 어깨를 으쓱하셨다. 바쁘다는 핑계로 늘 다음을 기약하고 미루던 나 또한 이제라도 함께 할 수 있음을 다행스럽게 여기며 효녀 흉내를 내곤 했다.


그동안 잘 버텨왔기에 이제 다 끝났구나 싶어 방심하던 즈음 코로나 확진을 받았다. 자가격리 해제 후에도 혹시나 하는 염려에 집에 머무는 시간을 늘렸고 그 사이 엄마는 여러 차례 전화를 걸어왔다. 몸 상태는 어떻고 많이 아프지는 않은지, 입맛이 없다는 데 먹고 싶은 것은 없는지 물으셨다. 그때마다 다음을 기약했고 서서히 다시 일상을 회복했다. 여느 주말처럼 느지막하게 일어나 간단히 아침을 먹고 노트북과 씨름을 하고 있는데 엄마 전화가 걸려온다. 물리치료 받으러 의원에 왔는데 밥을 사주고 싶다는 용건이다. 오전에 할 일이 있고 오후에도 행사가 있는 상황이라 머뭇거리다가 바로 연락을 하겠다고 말하고 전화를 끊었다. 갑자기 머릿속이 복잡해진다. 왕복 소요 시간과 점심을 먹는 데 걸리는 시간까지 대충 계산해도 오후 1시까지 도착하기가 빠듯하다는 계산이 나온다. 여러 차례 미뤄왔고 병원에 가셨다는 말이 마음에 걸려 바로 엄마에게 갈 준비를 서두른다.


누군가가 건네는 밥을 먹자는 말, 특히 밥을 사겠다는 말은 너와 만나고 싶다, 보고 싶다는 뜻이다. 어떤 이들은 의례적으로 누군가와 만났다 헤어질 때 '밥 한번 먹자'라고 툭 내뱉기도 하지만 나의 경우는 거의 진심인 때가 많다. 먹는 일에 애정이 많은 나는 좋아하고 편안한 사람과 밥 먹는 것을 즐기고 약속도 대부분 그런 기준으로 정하곤 한다. 맘에 없지만 필요에 의해 계획적으로 누군가와 약속을 만들고 밥을 먹는 이들을 보면 이해하기 어렵다. 그렇게 밥을 먹으면 체하지 않을까 쓸데없는 걱정을 하기도 한다.  


바로 가겠노라고 전화를 드리고 20여분이 지난 후 의원 앞에 도착해 엄마를 기다린다. 치료를 마친 후 처방전을 들고 약국으로 들어가는 뒷모습이 여느 날보다 더 구부정해 보인다. 3주 만에 모녀 상봉, 밀린 얘기를 나누며 야트막한 산속에 자리한 한적한 식당에서 꼬막비빔밥을 먹었다. 해를 거듭할수록 식사량이 줄고 뵐 때마다 더 굽어가는 손가락을 바라볼 때마다 가슴이 아슴하지만 곁에 계신 것만으로도 늘 감사할 뿐이다. 오후 일정에 마음이 급해 자꾸 시계를 확인하는 딸에게 직접 만든 수제 족발, 멸치볶음과 호박잎, 가지볶음, 깻잎나물까지 살뜰하게 챙겨주신다. 아쉽지만 다음 만남을 기약하며 돌아오는 길, 어느 새 차 안은 엄마 냄새로 가득해진다. "엄마 담에는 제가 밥 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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