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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은숙 Aug 05. 2022

두부를 꼭 챙겨주세요

다르게 산다는 것

식단 조절을 하면서 가장 먼저 멀리했던 음식은 밀가루와 붉은 고기, 튀김류 등이다. 처음에는 이걸 다 빼면 무엇을 먹나 싶었지만 환경에 적응하다 보니 그 외에도 먹을 수 있는 것들이 제법 많아 다행스러웠다. 식단을 건강식으로 바꾸면서 가장 불편한 점 중의 하나는 직장에서 동료들과 식사할 때이다. 작년 봄,  부서를 옮겼을 때 직원들이 음식취향을 물었다. 가리는 음식은 거의 없는데 밀가루를 잘 안 먹는다는 말에 실망하는 기색이 역력했던 기억이 난다. 아마도 비 내리는 날, 칼국수 먹으러 가기는 어렵겠다는 생각에서였을 듯하다.  그런데 그 부서에는 나보다 한술 더 떠 비건을 실천하는 팀장이 있었다. 그는 거의 채식 위주로 식사를 하고 심지어 멸치로 국물을 우려낸 된장국도 먹지 않는다. 가장 즐겨 찾는 메뉴는 곤드레밥이나 한식 종류이다. 혹여 구내식당 메뉴에 고기반찬이 많이 올라오면 할 수없이 외부 식당을 이용한다. 인원이 적은 점심은 웬만하면 그의 기호를 우선하지만 부서 회식을 하는 날은 삼겹살 등 고기류를 주문하고, 그를 배려해 두부요리와 멸치가 안 들어간 된장찌개를 별도로 주방에 부탁하곤 한다. 단골로 찾는 사무실 근처 백반집 사장님은 그가 등장하면 말하지 않아도 두부부침을 알아서 챙겨 주신다.


몇 년 전, 인근에 있는 샤브요리 전문점에서 회식을 하던 날 있던 일이라고 한다. 그날도 부서 직원은 그가 고기육수를 낸 샤브요리를 먹지 못하는 것을 알기에 주방에 신신당부를 했던 모양이었다. "이 분은 오늘 꼭 두부를 드셔야 하니 꼭 챙겨주세요"라고 말이다. 부탁받은 식당 직원이 드디어 두부를 들고 들어왔는데 모두 빵 터지고 말았단다. 식당 직원이 들고 온 것은 네모난 쟁반에 놓인 하얀 두부 한모였던 것. 비건이라는 설명 없이 '두부'를 꼭 챙겨달라는 말에 교도소나 유치장에서 갓 나온 것으로 오해해 순백의 두부 한모를 통째로 갖고 왔던 것이다.


그는 오랜 시간 비건을 실천하면서 음식과 관련된 에피소드들은 셀 수 없이 많다고 말한다.  늘 같이 점심을 먹는 시간을 비롯해 삼겹살이 거의 최애 메뉴인 직장 회식까지 고기 냄새가 자욱한 자리에서 겪었을 어려움이 상상된다. 오른손잡이를 당연시 여기던 시대, 왼손잡이들을 이상한 사람 취급하던 때가 있었다. 모든 물건들도 다 오른손잡이 기준으로 만들어진 탓에 그들은 일상생활에서도 어려움을 겪었다.  지금은 오히려 양손을 다 쓰는 것이 두뇌 계발에도 좋다 말하고 왼손잡이 전용 물건들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으니 다행스럽다. 거인 나라에서는 거인이, 소인국에서는 소인이 정상이라고 믿는 세상에서 누군가와 조금 다른 삶을 선택하고 실천하는 일은 그리 쉽지 않을 듯하다. 하지만 그것 또한 그의 삶의 방식이니 다름을 이해하며 자연스럽게 인정하고 존중해야 할 것이다. 오늘 사무실 점심 메뉴는 모처럼 칼국수와 김밥, 야채비빔밥을 하는 칼국수 전문식당이다. 그는 오늘도 소고기 다짐육을 뺀 야채 비빔밥을 주문했다. 여전히 그 덕분에 우리는 점심 메뉴를 고를 때마다 고민하고 우리와 다른 취향을 이상하게 여기고 불편해할지 모른다. 그럼에도 오랜 시간 자신이 선택한 생활방식을 꾸준히 실천하는 그의 노력에 응원을 보내주고 싶다. 그런 와중에 갑자기 그에게 궁금증이 생긴다. "우유와 치즈는 드시던데 계란은 왜 안 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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