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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은숙 Aug 06. 2022

 잔소리는 따듯하다

잔소리와 변명이 만났을 때

퇴근 후 주말 행사 관련 줌 미팅을 마치고 책상 앞에서 어영부영하다 보니 어느덧 밤 11시. 하던 일을 대충 마무리하고 거실로 나오자마자 분위기가 싸하다. 이내 들려오는 남의 편 님의 차분한 음성. 그 내용인 즉 "너무 피곤해 보인다", "몸 상태를 생각해야지 너무 무리하다가 큰일 난다" 등이 주를 이룬다. 한발 더 나아가 "지금 거울 좀 봐라. 얼굴 상태가 좋지 않다"까지. 모두 맞는 말이라고 인정하면서도 오늘따라 그 목소리가 유난히 잔소리처럼 여겨져 기분이 살짝 상한다. 가만히 새겨듣기만 했으면 금세 끝났을 텐데 나도 모르게 터져 나오는 변명들. "하고 싶은 일 하는데 그걸 왜 지적하느냐"부터 시작해서 억지스러운 말을 내뱉다 보니 순식간에 생각지 못한 방향으로 엇나가고 만다. 결국은 "가늘고 길게 살면 뭐해. 나는 하고 싶은 일 하다가 일찍 죽을 거야....."까지. 에고, 너무 멀리 나갔다. 하지만 이미 공중으로 흩어진 말이니 주워 담을 수도 없다. 말없이 이 상황을 지켜보며 옆에서 내 어깨를 주물러주던 딸이 옆구리를 슬며시 친다.


그는 평소 말이 많지 않다. 차분하고 내성적인 편이라 내가 똑같은 이야기를 여러 번 해도 참을성 있게 잘 들어주고 화도 잘 내지 않는다. 가만히 지켜보다가 너무 텐션이 높아지거나 이 정도 선에서 좀 멈춤이 필요하다고 판단될 즈음 가끔 한 마디씩 충고를 하는 정도이다. 말이 별로 없는 사람이 하는 말이니 귀담아들으면 손해 보는 일은 거의 없다. 나의 이성은 이미 다 알고 있다. 그의 말이 오늘 저녁의 일만 두고 하는 것이 아니고 근래 상황을 지켜보면서 느꼈던 묵은 마음을 전하는 것임을. 그리고 가족이자 가장으로서 충분히 할 수 있는 걱정이고 염려라는 것을. 한동안 쉼을 이어가는 듯 보였지만 일상 회복이 되면서 일정이 자꾸 늘어나고 무리하고 있음을 알기에 고심끝에 던진 말인 것이다.


저질체력이라 늘 골골대면서도 의욕이 넘쳐 무언가를 끊임없이 만들어내고 피곤해 얼굴이 수척해지는 상황을 지켜보면서 브레이크를 걸어주고 싶었던 속 깊은 정이요.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도 좋지만 무리하지 말고 몸 상태를 체크하면서 달려가라는 따듯함인 것이다. 웬만하면 듣고 수긍하거나 가끔은 무심한 듯 모른 척 한 날이 대부분인데 오늘따라 왜 그리 멀리까지 엇나갔을까.


이런 날은 얼른 자는 것이 상책이다 싶어 까슬한 입안을 다스릴 겸 염증 예방에 좋다는 프로폴리스 두어 방울을 삼키고 방으로 들어간다. 혹여 염려할까 말을 안 할 뿐 내 몸 상태를 가장 잘 아는 것은 나 자신이다. 최근 들어 아침에 일어나기가 쉽지 않고 자꾸 늘어나는 스케줄 때문에 혹시나 하고 몸 상태가 살짝 불안하던 즈음이기에 그의 애정 담긴 잔소리를 달게 받아들여야겠다고 맘먹는다. 아마도 애정이 없다면 까칠한 반응을 예상하면서 그런 말을 하지도 않았을 테니 말이다. 그의 깊은 속내를 뻔히 알면서도 잔소리라 여기며 말도 안 되는 변명을 속사포처럼 쏟아놓은 나를 되돌아보며 카톡 프로필 상태 메시지를 바꾸고 잠을 청한다. "워~~ 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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