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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은숙 Aug 07. 2022

내 생에 '효녀' 되기는 틀렸다?

'괜찮다'는 말의 의미

열대야에 잠을 설친 탓인지 편두통에 찌뿌둥한 아침. 코로나로 격리 중인 엄마가 가슴이 답답하고 식은땀을 자꾸 흘린다는 소식을 전하는 동생 목소리에 근심이 가득하다. 설마 하면서도 마음이 불안해진다. 확진 초반에 두통, 근육통 등 여러 증상이 있었지만 며칠 만에 호전돼서 다행스럽게 여겼는데 평소 치료받고 있는 기저질환에 기인한 증상일까 싶어서이다. 첫날 4일분 약을 처방해 갖다 드리고 이틀 동안은 전화로만 안부를 확인했다. 점심시간이나 퇴근 후에 식사를 포장해 들리겠다고 전화할 때마다 엄마 대답은 한결같았다. '괜찮으니까 오지 말라'는 것이다. 못 들은 척하며 여러 가지 메뉴를 언급해도 엄마는'먹고 싶은 것'이 생각나면 연락할 테니 번거롭게 절대 오지 말라고 단호하게 말했다. 나 또한 가끔 기침 증상 빼고는 특이사항이 없다는 말에 주말에 가봐야지 하며 방심한 것이 화근이었을까. 전화를 끊고 나자 벌어지도 않은 일들이 물감 번지듯 불안한 상상의 나래를 펴기 시작한다. 인터넷으로 대면진료 절차를 검색하면서도 '괜찮다'라는 말로 내내 나를 안심하게 했던 엄마의 말을 곱씹으며 외출 준비를 서두른다.


인근 종합병원에 엄마 증상을 말하며 대면진료 여부를 문의하니 대학병원에 가라고 말한다. 가장 가까운 대학병원 응급센터에서도 진료는 가능하지만 대기시간이 길고 입원하게 될 경우 병상이 없다는 부정적인 답변이다. 고민 끝에 일단 평소 다니던 지역 종합병원에서 대면 진료를 받는 것으로 결정하고 전화로 진료예약을 마쳤다. 걱정스러운 마음에 형제 단톡방이 요란해질 즈음, 드디어 엄마 집 도착. 기력이 없어 보였지만 염려했던 것보다는 얼굴빛이 나쁘지 않아 보여 다행스럽다. 대면진료 지정 시간에 맞춰 병원에 도착해 호흡기 전담 클리닉 별도 진료소에서 대기 후에 진료를 받을 수 있었다. 항생제와 영양 수액 3개를 다 맞고 나니 이미 점심시간이 훌쩍 지나 있었다. 고민 끝에 평소 잘 드시던 해장국을 포장해 폭염 속을 지나 집으로 돌아가는 길, 혹시나 하는 최악의 경우를 떠올리며 작아졌던 마음이 그제야 조금 편안해진다. 긴장이 풀린 탓인지 아침식사를 건너뛴 뱃속은 눈치 없이 요란해지고, 오후 일정을 위한 출발 시간을 30분 늦추는 걸로 상황은 일단락되었다.


처음 겪는 일이라 당황스럽던 순간들을 떠올리며 오랜 시간 동안 불평 한마디 없이 엄마를 전담 케어했던 동생의 무던하고 속 깊은 마음과 그간의 어려움들이 짐작되어 미안함이 앞선다. 엄마의 '괜찮다'는 하얀 거짓말부터 두통 탓인지 단톡방에서 혹시나 하는 마음에 사소한 것들을 자꾸 묻는 형제들의 염려에도 예민하게 반응하고, 언니만 힘들게 하는 것 같다며 진심을 담아 건네는 '미안하다'는 말에도 마음이 편치 않던 날이다. 그녀의 '괜찮다'는 말은 당신 때문에 딸이 번거롭고 힘들까 봐 건넨 배려이자 따듯한 사랑이고, 동생들의 '미안하다'는 말은 멀리 있어 당장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그네들의 진한 마음을 전하는 말인 것이다. 기억을 더듬어보니 평소에도 엄마는 늘 그랬다. 집에 당신이 할 일이 있으면 같이 하자고 하기보다 얼른 집에 가라고 내 등을 떠밀곤 했다. 한동안 전화가 없으면 혹시나 하는 걱정에 거꾸로 딸의 안부를 묻던 엄마. 이번에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늘 바쁜 딸에게 폐가 될까 염려해 입맛이 없고 컨디션이 별로였음에도 괜찮으니 오지 말라고 말했던 것이고, 눈치 없는 딸은 엄마의 말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고 편안하게 잠을 잤던 것이다.


당신이 아픈데도 여전히 딸이 약속에 늦지는 않았는지, 피곤하지는 않은지를 먼저 염려하는 엄마에게 나 또한 '괜찮다'라고 말하며 포장해간 해장국으로 늦은 점심을 차려드린다. 이 상황에도 아침에 무쳤다며 챙겨가라고 내미는 고추무침을 엄마 드시라고 슬쩍 밀어놓고 현관문을 나선다. 강아지 두 마리가 유일한 친구인 휑한 집에서 간밤에 홀로 식은땀을 흘리며 잠을 설쳤을 엄마의 모습이 떠올라 발걸음이 무겁다. 자식으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하면서 몇 시간 동안 시소 타듯 오르락내리락 요동쳤던 소심한 내 마음들이 민망해 뒷목이 뻐근하고 두통도 더 심해진 듯하다. 효녀 되기는 어려운 성정을 갖고 있음이 분명한 노란 내 싹수를 확인한 순간들이 씁쓸하지만 엄마의 '괜찮다'라는 말의 깊은 의미를 이제라도 알게 되었음이 그나마 다행스러운 날이다.


그다음 날 오전, 나는 녹두삼계탕을 사들고 엄마한테 다녀왔다. 물론 이번에는 간다는 말도, 포장해 갈 음식메뉴도 미리 묻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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