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은숙 Aug 03. 2022

못난이 복숭아와 황도

선산은 굽은 소나무가 지킨다

좀 전까지 약봉투와 뜨끈한 전복죽, 고기만두가 앉아있던 조수석을 올망졸망한 못난이 복숭아와 황도 다섯 개가 차지한다. 모처럼 주말 당직으로 대체휴무를 받은 날. 병원 정기검진, 낭독 녹음, 밀린 책 읽기까지 할 일을 머릿속으로 줄 세웠건만 엄마의 코로나 확진으로 모든 순서가 뒤죽박죽 된 날이다. 쉬는 날이라 늦잠을 자고 싶은 마음이 굴뚝이지만 목이 많이 아프다는 엄마 말에 조급해진다. 삶은 계란과 사과로 요기를 하고 친정으로 향한다. 첫 행선지는 비대면 약 처방을 받기 위한 병원행. 재택치료 안내에 나와있는 병원이 세 곳인데 두 곳이 휴가 중이다. 세 번째 도착한 의원에서 엄마의 증상을 꼼꼼히 말하고 4일분 약 처방을 받았다. 다음 코스는 죽집. 평소 죽을 좋아하지 않으시지만 목이 아프다는 말에 혹시나 해서 전복죽을 포장하고 갓 찌어낸 만두도 한팩 산다. 서둘러 친정에 가는 중간에 혹시 감염될지 모른다며 문 앞에 약봉지를 걸어두고 가라는 엄마의 전화가 걸려온다. 확진된 지 얼마 안 됐고 마스크를 잘 쓰면 괜찮다고 엄마를 안심시키며 운전에 속도를 낸다. 


시골 국도변 인근에 위치한 이층 집. 초등학교 4학년 무렵 지어졌으니 벌써 40년째 자리를 지키고 있는 터줏대감이다. 무더위 탓인지 동네는 인적 하나 없이 고요하다. 차에서 내려 약봉지와 죽, 만두를 챙겨 들고 엄마가 정성스레 심고 가꾸는 들깨밭을 지날 때쯤 콩순이가 달려 나온다. 아마도 대문이 열려있었나 보다. 작년 봄 무렵 엄마네 새로운 식구가 된 콩순이는 잡종 강아지이다. 이웃집에서 얻어올 무렵 1kg도 안될 정도로 작아서 붙여진 이름으로 영특하고 귀여워 온 가족은 물론 동네 어른들, 택배 아저씨의 귀여움을 독차지하고 있다. 반갑게 이름을 불러주자 배를 내밀며 땅바닥에 눕는다. 그녀만의 환영 세리머니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니 평소와 달리 활기가 없는 엄마가 마스크를 쓴 채로 맞는다. 하룻 사이 야윈 듯싶어 마음이 애잔해진다. 목 통증을 호소하는 엄마에게 서둘러 약봉지를 건넨다. 알약을 삼키고 가래 해소를 위한 진해거담제를 끝까지 야무지게 짜 먹는 엄마. 이야기를 주고받다 피곤해하는 엄마에게 약 드셨으니 한숨 주무시라고 말하며 현관문을 나선다. 이내 따라 나온 엄마는 창고 냉장고에서 동네 아줌마가 갖다 줬다며 플라스틱 통에 담아둔 못난이 복숭아 한 박스와 엊그제 휴가차 왔던 아들이 사 왔을 황도 다섯 개를 챙겨 주신다. 통 속에 담겨있는 복숭아는 제때 솎아내지 않아 자라지 못한 듯 못생기고 크기도 작아 맛이 있을까 의심스럽지만 무엇이든 딸에게 주고 싶은 엄마 마음을 알기에 흔쾌히 받아 들고 대문을 나선다. 


병원과 미용실까지 들러 집에 돌아오니 오후 1시가 넘은 시각. 배가 고프기도 하고 복숭아 맛이 궁금해 플라스틱 통을 연다. 탁구공보다 조금 큰 크기. 그중에 색이 좀 고운 것을 골라 찬물에 씻어 한 잎 베어 문다. 사실 맛없는 과일은 무보다 맛이 없어 먹기 어렵다. 아주 단맛은 아니지만 다행히 먹을만하다. 상태가 안 좋은 것도 있지만 그중에 괜찮은 것을 골라 먹으면 아마도 며칠은 과일을 좋아하는 나의 간식거리가 될 것이다. 엄마의 확진으로 형제 단톡방이 요란하다. 맘은 있어도 멀리 사는 탓에 전화로 밖에 엄마 상태를 확인할 수 없으니 가까이 있는 나에게 궁금한 것이 많아진 것이다. 가볼 수도 없고 모처럼 언니 쉬는 날인데 쉬지도 못해 어쩌냐며 미안해한다. 마침 쉬는 날이어서 다행이고 저녁식사 즈음에도 한번 더 다녀오겠노라며 동생들의 걱정을 상쇄시킨다. 엄마 확진으로 다음 주 함께 계획했던 2박 3일 휴가 일정도 다 취소되었고 아쉽지만 가을을 기약했다. 


예로부터 어르신들은 고향을 지키는 것은 굽은 소나무라고 말한다. 잘난 자식은 나라의 자식, 며느리의 남편이요 못난 자식만 내 자식이라는 우스개 소리와 비슷한 말일 것이다.  이곳에서 자라 결혼하고 30년째 직장을 다니며 여전히 엄마의 김치와 멸치볶음을 먹으며 그늘에 머물고 있는 나야말로 아마도 엄마에게는 굽은 소나무이자 생긴 것은 별로지만 단맛이 있어 그나마 손길이 가는 못난 복숭아가 아닐까. 이런 상황이 없다면 더욱 좋겠지만 평소 바쁘다며 엄마를 뒷전으로 여기는 큰딸이 가까이에 머물며 그녀의 손과 발이 될 수 있음이 다행스러울 뿐이다. 고요와 적막만 떠다닐 집에서 홀로 바이러스와 싸우며 식은땀을 흘리고 있을 그녀. 이번에도 건강하게 잘 이겨내고 가을에 함께 떠난 휴가지에서 그녀가 좋아하는 소주 한잔을 나누며 환하게 웃을 수 있기를 기도한다.  "엄마, 오늘 저녁은 엄마 좋아하는 콩 뿌리에서 순댓국 포장해서 갖고 갈게요".

작가의 이전글 도둑 독서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