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천국

by 정은숙

눈이 흩날리는 크리스마스 아침, 마을행사가 있어 사무실로 향하는 길에 엄마에게 안부 전화를 걸었다.

"오늘은 뭐 해?"

"나, 출근했지"

"벌써?"

"그럼, 10시도 안 돼서 왔어. 따뜻하지, 사람들 있지, 여기가 바로 천국이야"

엄마의 출근 장소는 바로 마을 회관. 이웃에 사는 아줌마들과 벌써 회관에 도착해 청소까지 대충 마치고 쉬는 중이란다. 자연스레 툭 튀어나온 '천국'이라는 단어에 웃음이 번진다. 엄마가 제일 좋아하는 장소 중의 한 곳인 마을 회관은 내가 초등학교 다닐 무렵 지어진 아주 오래된 건물이다. 이후에 리모델링을 여러 번 거쳐 현재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 이곳은 엄마 말대로 동네 어르신들의 식당이자 놀이터, 말 그대로 소통의 장소이자 휴식 공간으로 늘 북적거린다. 매일 아침 부지런한 몇몇이 먼저 도착하면 깨끗하게 청소를 하고 오전 11시쯤 되면 누가 말하지 않아도 점심 식사를 같이 준비한다. 메뉴는 그날 냉장고에 있는 식재료로 정해지고 가끔은 중국음식을 배달해서 먹기도 하고 인근에 새로운 식당이 개업하면 여러대로 차를 나눠 타고 단체로 외식을 하기도 한다. 일주일에 한두 번은 요가나 건강체조 프로그램이 운영되고 가끔은 봉사단체에서 찾아와 어르신들을 위한 이침봉사와 레크리에이션으로 즐거움을 선사하기도 한다.


엄마의 말에 의하면 함께 식사하고 소소한 안부를 나누는 특별하게 즐거운 일도 없지만 그곳은 어르신들을 위한 따뜻한 아지트로 사랑받는 공간이다. 젊은 사람 기준으로 보면 심심하지 않을까 싶지만 엄마 표정을 보면 만족도 최상이다. 특히 마을회관을 좋아하는 오지랖 넓은 엄마의 주 일과 중의 하나는 혼자 사는 치매 증상이 있는 이웃의 식사를 챙기는 일이다. 예측을 불허하는 돌발행동 때문에 다른 어른들이 가끔 싫은 소리를 해도, 자식들이 너무 나서지 말라고 말려도 소용없다. 때때로 목욕을 시켜주고 읍내에 있는 미용실도 함께 모시고 다닌다. 그러다 예기치 못한 사고나 위험부담도 있으니 남들이 싫어하는 일은 굳이 하지 말라고 말려도 소용없다. 안쓰러운 그녀들을 챙기는 것은 오래된 이웃사촌이 당연히 해야 할 일이라고 여기는 인지상정 때문이리라.


지난해 여름 엄마는 무릎 연골 수술을 받으셨다. 일을 너무 많이 하신 탓에 연골이 닳았다는 진단으로 수술을 받았고 정상적으로 걸음을 걷기까지 퇴원 이후에도 한 달여 동안 집에 머물렀다. 이웃들은 왕언니의 빠른 복귀를 기다렸지만 불편하게 걷는 모습을 보여주기 싫으셨던지 집에서 꼼짝도 안 하셨다. 평소 활달하고 사람들과 어울리기를 좋아하는 성정의 엄마에게 그 시간은 아마도 감옥 같이 힘겨운 시간이었을 것이다. 팔순이 넘었지만 식사 시간이 다가오면 제일 먼저 주방으로 달려가는 사람, 어려운 이웃이 있으면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꼭 챙겨야 마음이 편해지는 사람, 아무리 자식들이 나서지 말라고 말려도 본인이 맞다고 여기면 고집을 꺾지 않는 사람. 수도승처럼 꼼짝도 안 하던 엄마가 회관으로 다시 가기 시작한 것은 이제 지팡이를 집고 걸어도 된다는 의사의 진단이 내려진 바로 다음날부터였다. 오랫동안 기다렸던 이장 아줌마와 어르신들의 환호와 함께 엄마의 천국은 그렇게 다시 시작된 것이다.


크리스마스 날, 특별한 일정이 없어 서운할까 싶어 안부 전화를 드렸는데 밝은 목소리로 너무 자연스럽게 튀어나온 엄마의 천국 예찬에 안도한다. 딸과 함께 밥을 먹고 커피를 마시고 여행을 하는 시간도 좋지만 엄마에게 더 귀하고 행복한 시간은 오랜 시간 한 마을에서 동고동락한 사람들과 어울리는 시간, 함께 소통하는 시간. 비싼 음식이 아니어도 그냥 함께 어울려 나눠 먹는 일, 가끔은 티격태격하면서도 쌓인 정들 이 엄마를 행복하게 한다는 것을 새삼 체감한다. 남보다 더 높이, 더 빨리 나아가기 위해 비교하고 애태우며 사는 삶을 떠올리며 행복의 기준을 생각한다.


얼마 전 남편을 졸라 명품 머플러 한 개를 선물 받았다. 지금 돌이켜보니 가장 행복했던 시간은 머플러를 고르는 시간과 택배로 도착한 상품을 개봉하는 순간까지였다. 2주 정도 매일 착용했지만 그것뿐. 어느새 내 목에는 저가의 머플러가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그러고 보면 행복의 기준이나 척도는 남이 아닌 나 자신이 만드는 것이다. 내가 정해놓고 나를 옭아매는 그것들 때문에 항상 실망하고 괴로워하는 것이다. 남들이 보면 아무것도 아닌 일인데 타인과 비교하며 움츠러들고 나름 애쓰고 최선을 다해 살아온 나를 아주 작은 사람으로 취급하며 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볼 일이다. '나는 오늘도 많은 일들과 만났고 견딜 수 없는 일들까지 견뎠다. 아름대로 최선을 다한셈이다'라는 나태주 시인의 시구가 바로 나를 위한 회초리이자 위로의 다른 말인 것이다.


마을회관에 가셨다는 엄마를 기어이 그 천국에서 모셔와 읍내에 있는 카페에서 따듯한 차 한잔을 마셨다. 차를 마시고 자리에서 일어나자마자 엄마는 또 그 천국에 가신다며 걸음을 재촉한다. 내일은 엄마가 제일 좋아하는 그 천국에서 마을 총회가 열리는 날이다. 마을 어르신들이 좋아하는 통 막걸리를 사다 드리면 천국에서 또 한 번 환한 웃음을 지으며 우쭐해하실 엄마 모습에 내 마음이 먼저 천국으로 달려간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