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만 상복

by 정은숙

늦은 밤 악을 쓰며 우는 아이의 울음소리와 제어할 수 없는 듯 터져 나오는 부부의 고성에 간신히 잠들었다. 시곗바늘은 이미 새벽 1시를 지나고 있는데 무슨 일일까 하는 궁금증보다 잠을 방해하는 소음에 짜증이 일었다. 그 탓이었을까 쉬이 잠들지 못했고 몸에서는 열이 나고 길지 않은 잠자리마저 그리 편치 않았다.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무는 형국이 무한 반복되었기 때문이다. 그런 상황을 알탓이 없는 휴대전화 알람은 원망스럽게 아침 7시가 되자마자 소임을 다하려는 듯 요란하게 울린다. 알람을 끄고 다시 눈을 감는다. 10여분 정도 더 늑장 부려도 늦지 않으리라는 계산에서다. 물론 오늘은 더 오래 게으름을 피워도 된다. 하루 남아있는 휴가를 냈기 때문이다. 연말 탓인지 12월 달력에는 날짜마다 빈칸이 없을 정도로 빼곡하다. 그나마 오늘 일정이 가볍다는 판단에 시간을 내기로 맘먹었고 그동안 차일피일 미루던 정기검진을 받을 예정이다. 금식이 필요한 검사가 있어 억지로 침대에서 빠져나와 외출 준비를 서두른다. 요즘 몸도 마음도 편치 않았던 시간이 많았던 탓에 걱정이 앞서지만 미리 걱정하지 않기로 한다. 오늘도 회사에 가기 싫다는 둘째 출근 시간에 맞춰 함께 집을 나선다. 여러 차례 이직을 고민하기도 했지만 벌써 직장생활 3년 차에 들어선 아들. 다람쥐 쳇바퀴 돌듯 반복되는 일상이 여전히 적응되지 않는 듯하다. 그 상황을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보면서도 그가 기대하는 특별한 말을 해주기는 쉽지 않다. 나 또한 그런 시간들을 넘고 견디며 30여 년을 지나왔으리라. 기껏해야 연차가 좀 쌓이고 직위가 달라지면 조금은 더 수월해질 것이라는 막연한 말을 반복할 뿐이다.


어제는 두 사람의 죽음을 만났다. 얼굴은 모르지만 같은 직장에 있는 아주 젊은 동료와 지인의 또 다른 젊은 아들. 갑작스러운 이별에 하염없이 눈물짓는 아버지를 보는 순간 나도 모르게 눈물이 차올랐다. 생각했던 어떤 위로의 말도 아무 소용없는 순간. 동행한 80대 회장님의 "마음 단단히 먹어야 한다"는 짧은 말이 오래도록 귓전을 서성거렸다. 마음의 준비 없이 떠났을, 어쩌면 오래도록 아무도 모르게 그 순간을 마음먹었을 두 젊은이의 마음을 떠올리며 천천히 빈소를 나왔다.


누군가의 예기치 않은 죽음을 보면서 삶을 생각한다. 반백년이 넘는 삶이지만 여전히 어렵고 어떻게 사는 것이 잘 사는 삶인지 고민하는 날이 많다. 지금 이대로 괜찮은 것일까. 나는 정말 잘 살고 있을까 라는 질문에도 쉽게 답하지 못한다. 그 해답을 찾고 싶은 답답한 마음에 한동안 읽으며 위안을 얻었던 책을 다시 뒤적거려 보지만 어떤 글귀도 나를 채워주지 못한다. 삶이란 정답이 없는 딤의 과정임을 새삼 재확인할 뿐이다. 유난히 몸과 마음이 버석거리는 즈음이다. 올 한 해 내가 희망하고 꿈꿨던 일들을 곱씹어 보며 다시 한번 실망하고 절망하는 시간이 조금씩 늘어난다. 이 정도면 최선을 다하고 있는 것이라고 자꾸 읊조려봐도 헛함이 메워지지 않는다. 그 시간이 길어질수록 잠 못 이루는 시간이 늘어가고 신경은 더 예민해질 뿐이다. 나의 기준에 누군가를 맞추려 하지도, 내가 맞다고 무조건 우기지도 말라고 다독거려도 그 상황들이 지워지지도 해결되지도 않는다. 잊었다고 믿고 싶지만 다시 불현듯 온통 머릿속을 채우고 마는 형국이 무한 반복되는 것이다.


서둘러 병원에 도착하니 오전 8시 10분. 벌써 대기석은 빈자리가 없다. 대기표를 뽑은 후 주위를 둘러본다. 두런두런 대화를 이어가는 부부, 검진을 받는 남편을 타박하는 중년 아내, 공복을 유지하지 않고 와 발길을 돌리는 이들까지 표정도 상황도 다양하다. 그 와중에도 내 마음속은 이미 검진 결과를 예단하며 걱정이 서성댄다. 근래 내 마음도 몸도 부산스러웠던 탓에 그 영향이 있지 않을까, 결심과 달리 나날이 늘어가는 체중계의 눈금도 불안에 다리를 얹는다. 두 번 반복해서 혈압을 재고 채혈한 후 초음파 검진까지 예정보다 빨리 진행되었고 진료실에서 바로 이름을 부른다. 앳된 얼굴의 의사가 초음파 화면을 보여주면서 자상한 설명을 이어간다. 지난번보다 더 나빠진 것도 달라진 것도 없다는 말에 안도의 숨을 내쉰다.

서둘러 병원건물에서 빠져나오자 기다렸다는듯 차가운 공기가 얼굴을 훅 감싼다. 그 냉기 탓일까. 젊은 아빠 빈소 앞에서 연신 눈물을 닦아내던 어린아이의 까만 상복이 자꾸 떠오른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