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고 어질게, 산 같은 마음으로

by 정은숙

거미줄처럼 어지러운 마음밭 탓에 쉬이 잠들지 못했는데 어느새 기상 알람이 울린다. 오전 4시 40분. 2026년 병오년 해맞이 행사 참석을 위해 출근준비를 서두른다. 영하 10도까지 하강한다는 일기예보를 떠올리며 평소 입지 않던 기모타이즈와 내복까지 만반의 채비를 한다. 몸이 뒤뚱거리지만 모직 코트 위에 롱패딩까지 챙겨 입은 후 집을 나선다. 일찍 잠이 깬 아들이 따듯한 핫팩 한 개를 살짝 건넨다.

생각보다 출발시간이 지체된 탓에 나도 모르게 자동차 엑셀을 세게 밟는다. 사무실이 이미 환하다. 두툼한 패딩으로 무장한 직원들이 삼삼오오 모여 있다. 만약의 경우를 대비해 발바닥과 등, 그리고 배 부근에 핫팩을 부치고 행사장으로 향한다. 이미 활활 타오르는 장작불 앞에 인파가 하나 둘 모여들기 시작한다. 누구보다 먼저 새해를 맞이하기 위해 부지런을 떤 사람들일 것이다. 행사 준비를 하는 동안 식전 공연으로 새벽 공기를 가르는 풍물단의 연주가 울려 퍼진다. 언제 들어도 신명 나는 박자다. 한 해의 평안과 지역의 번영을 축원하는 기원문을 시작으로 새해의 기도를 담은 축시 낭송이 마음을 가득 채운다. 힘차게 울려 퍼지는 신세계교향곡 배음에 나도 모르게 귀를 쫑긋 세우며 휴대폰을 그녀를 담는다. 새해 첫날, 한 자리에 모인 이들의 안녕과 복을 기원하는 따듯한 덕담과 만세삼창에 이어 해가 떠오르기를 기원하는 두레풍물 공연이 차가운 아침을 따사롭게 연다.

새해가 되면 매번 처음인 듯 계획을 세우고 결심을 다진다. 신기한 건 매번 크게 달라지는 것도 특별할 것도 없는 아주 평범한 일들이라는 것이다. 예를 들면 매일 만보 걷기, 글쓰기, 건강하기, 긍정적인 생각하기 등이다. 지난해 마음먹었던 일들 중에 가장 간절했던 한 가지는 결국 불발로 마무리되었다. 일말의 기대를 했던 공적인 일의 결과도 보란 듯이 숟가락을 얹었다. 이후로 누차 다독거려도 결론은 부족한 나 자신을 가리키고야 마는 시간이 반복되었다. 평소 좋아하는 시를 읊어도 책을 읽어도 누그러지지 않았다. 쓸데없는 욕심과 비교라는 못된 허울이 내 안에 꽉 차 있다는 증거일 것이다.


지혜와 도전을 상징한다는 병오년에는 종전과 다른 목표 하나를 추가하기로 마음먹는다. 쓸데없는 비교의 마음과 욕심이라는 갑옷 벗어버리기. 결국 나를 소리 없이 갉아먹는 불필요한 일임을 너무도 잘 아는 탓이다. 1년 6개월 함께한 후배가 마지막 인사전화를 하며 고맙고 미안하다고 말한다. 부족한 점이 많았다며 더 열심히 하지 못한 것이 아쉽고 죄송하다고 덧붙인다. 그녀 또한 내 욕심을 눈치챘다는 증거다. 부족하고 미련한 속내를 들킨 것 같아 새삼 부끄러워진다. 내 능력이 부족함을 탓하기보다 주변 사람들의 미온적인 업무방식 탓이라고 우기고 싶었던 나를 너무 잘 아는 까닭이다.

떡국을 기다리는 줄이 하염없이 길어질 즈음, 흐렸던 하늘에 새날을 알리는 새로운 태양이 빼꼼 얼굴을 내민다. 마치 처음 본 듯 설레는 마음으로 그를 반갑게 맞이한다. 새롭게 선물 받은 축복 같은 365일, 산처럼 깊고 어질게, 산 같은 마음으로 따사롭고 지혜롭게 채워야겠다 마음먹으며 차가운 새벽공기를 깊게 들이마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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