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는 일의 의미

by 정은숙

새해를 맞으며 정한 목표 중에 하나는 매일 한 편의 글을 쓰는 것이다. 완성도보다 쓰는 일 자체에 의미를 두기로 한 것이다. 길이도 신경 쓰지 말고 그저 그날 느꼈던 심상이나 내 마음을 들여다보는 것에도 도움이 된다는 생각에서다. 다행히 1월 1일 이후 어제까지, 그래봐야 7일이지만 그 결심을 이어오고 있다. 그런데 문득 아침에 마음이 힘들고 괴로운 일이 많으면 글을 더 자주 쓰게 되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매번 비슷한 글에 어찌 보면 읽는 사람은 지겨울 정도의 신세한탄이나 자아반성일 수도 있지만 그럼에도 그렇게라도 쏟아내고 나면 마음결이 한층 잔잔해지는 경험을 한다. 그래서 사람들이 이렇게 글쓰기에 열심인가 싶기도 하다.


2022년 브런치 작가 승인 후 오늘부터 1일이라는 글을 시작으로 야심 차게 시작했던 글쓰기가 어느 순간 텅 빈 날이 많아진 것이 한참 되었다. 그나마 활동하는 단체에서 문집 발간 등을 이유로 작품을 제출하기 위해 어설프나마 글을 쓰기도 했지만. 막연하게 시가 쓰고 싶었던 때가 있었다. 그저 시인이라는 말이 좋아서 그랬던 것 같다. 그 방면에 재능은 거의 없음을 알면서도 그냥 어떤 순간이나 상황을 보고 마음속에 그려지는 단어들을 늘어놓고 시라고 우기고 싶었다. 그러던 어느 날, 글쓰기로 한참 선배이신 한 분이 말씀하셨다. "자네는 시보다 수필이 더 잘 어울릴 것 같아"라고. 이어서 "시는 삶이 고통스럽고 힘든 사람들이 쓰는 것인데 나는 표정이 너무 밝고 환해"라고 말씀하셨다. 나도 그렇게 쉽고 편하게만 산 사람은 아닌데 어찌 그렇게 보였는지 의아스러웠던 기억이 난다. 사실 그분은 모임에서 몇 차례 안면은 있지만 친하지 않아서 대화를 많이 나눠보지 못한 분이어서 더 당황스러웠다.


시 쓰기의 어려움을 알고 있던지라 반신반의하며 그 이후로 시를 접고 수필을 쓰기 시작했던 것 같다. 처음에는 몇 문단을 이어가기가 어려워 실망하고 절망했지만 자꾸 쓰다 보니 어느덧 제법 긴 글도 쓸 수 있게 되었다. 그것도 100일 쓰기를 두어 번 반복하고서야 얻은 결과였다. 문제는 제대로 배운 적 없이 홀로 쓰기를 이어가다 보니 나만의 틀이 생겨버리는 부작용도 생겼지만 말이다. 누구처럼 등단하거나 신인상을 타 본 적도 없고, 어엿한 내 이름 석자가 새겨진 단독 수필집을 내는 이들을 부러워하는 일이 여전히 반복되고 있음에도 나는 여전히 글쓰기를 놓지 못한다. 이사하면서 책장의 책들을 골라내고 덜어냈음에도 또다시 작은 책장과 소파 곁에는 한 권씩 늘어나는 중이다. 마음은 앞서는데 여전히 몸이 따라가지 못하는 형국이 무한반복 중인 것이다.


늦은 밤, 카톡을 주고받던 동생이 요즘 썼던 브런치 글을 읽었던지 너무 잘하려고 하지 말고, 하나씩 내려놓으라고 말한다. 내려놓기가 힘들지만 그래야 내가 산다는 의미일 것이다. 딸의 말대로 나는 그 힘든 산을 넘어왔음에도 어쩌면 '힘들다'는 느낌을 모르고 사는지도 모르겠다. 늘 쉼 없이 달리는 것이 습관처럼 몸에 배여서 무엇이든 하고 있어야 마음이 편안해지고 피곤하고 힘들어도 그건 당연한 일이라고 여기며 사는지도. 기껏 동생의 염려에 "직장을 그만둬야 그게 가능할 것 같아"라고 말하는 걸 보면. 그럼에도 여전히 나에게 쓰는 일은 어쩌면 내가 사는 일임에 분명하다. 그로 인해 삶이 한결 정갈해지고 조금 더 행복해지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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