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 눈처럼

by 정은숙

연말부터 여러 가지 일이 겹쳐 내내 아우성쳤다. 두통약을 먹으며 아무 일 없는 척 버텨냈지만 몸이 먼저 표시를 냈다. 그런 와중에 포기하고 마음을 접었던 곳에서 문자가 도착했다. 무려 예정됐던 기일보다 한 달여나 지난 후였다. 설마 하면서도 내심 기쁜 마음은 어쩔 수 없었다. 해결해야 할 아니 해결하고 싶은 나만의 숙제가 마무리되었기 때문이다.


슬픔과 기쁨은 쌍둥이처럼 늘 함께 온다. 그러니 슬프다고 너무 힘겨워할 일도 아니고, 기쁘다고 지나치게 수선 떨 일도 아닌 거다. 양지를 걷다 보면 음지에 이르고, 음지를 걷다 보면 양지가 나올테니 말이다. 다만 각각의 강도와 시간의 차이 일뿐. 어떤 시인은 고통은 극복하는 것이 아니고 단지 견디는 일이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견딤과 극복은 어떻게 다를까.


모처럼 주말 내내 집에 머문다. 황석영 소설가의 신간 <할매>를 읽으면서 시간을 보낸다. 좀처럼 진도가 나가지 않아 내려놓을까 할 즈음에서야 기대했던 스토리가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읽다 보니 도입부의 상세한 서사의 이유가 이해된다 내가 사는 지역의 지명이 등장할 때는 반가운 마음이 앞서 읽는 속도가 빨라진다.


강풍과 한파주의보에 이어 눈 소식이 이어진다. 재난 단톡방이 소란스러워질 무렵 자꾸 시선은 창밖을 향한다. 거센 눈보라가 몰아쳐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다. 설마 이 정도에 눈이 쌓일까 하면서도 내내 염려가 앞선다. 오늘 밤은 아마도 밤새 깊은 잠을 이루지 못하리라. 세상의 모든 것을 덮어버리는 하얀 눈처럼 근심걱정과 슬픔도 새하얗게 덮였다가 흔적도 없이 사라지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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