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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은숙 Aug 11. 2022

완벽주의와 이별하는 법

완벽주의는 미화된 두려움이다.

오전 6시 딩동 소리와 함께 하나 둘 입장하는 줌 새벽 낭독. 이른 시간 탓에 조금은 탁하지만 여전히 낭랑한 그녀들의 목소리로 오늘도 어김없이 책을 듣는다. 어제부터 만난 책은 줄리아 캐머런의 <아티스트 웨이, 마음의 소리를 듣는 시간>. '세상의 모든 소리에 귀 기울여 나를 바꾸는 법'이라는 부제가 궁금증을 불러일으킨다.  잠이 덜 깬 상태로 멍하니 듣다가 귀에 박히는 내용들에 솔깃해져 나도 모르게 다음 페이지를 미리 넘긴다.


"완벽주의는 결국 미화된 두려움이다. 바보같이 보일까 봐 두려워서 우리는 물러선다. 스스로에게는 상황을 고려해야 한다며 핑계를 댄다. 실제로는 고려할 일도, 물러설 이유도 없는데 말이다."


'완벽주의와 이별하는 법'이라는 소제목에 눈길이 한참 머문다. 평소에 하고 싶은 일이 생기면 쉽게 시작하는 것은 물론 합리적이고 적극적인 성정이라고 여기며 살았다. 어느 순간 삶을  들여다보니 무언가를 끊임없이 시작하고 시도하고 있지만 늘 피상적인 것에 불과했을 뿐 그 자리에서 한 발도 더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결정적인 순간에는 이성이라는 이름으로 미리 방어막을 치고, 좀 더 완벽한 준비가 된 후에 라는 이유를 들어 막연한 다음을 기약한다. 예를 들면 시집 또는 책을 출간하고 싶다는 마음이 스멀거리면 나는 재능도 없고 실력도 없어. 더 공부가 필요해라고 다독이며 그 목표를 이루는 시기를 아직은 요원한  퇴직무렵쯤으로 슬쩍 미루는 것이다. 그럼에도 월요일부터 일요일까지 늘 바쁘다.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여겼던 일들이 오히려 스트레스라는 다른 이름으로 나를 갉아먹을 때도 있다. 그 중심에는 새로운 욕구가 생길 때마다 크고 작은 이유와 핑계를 대며 마음의 소리를 외면하는 내가 큰 벽처럼 버티고 있는 것이다.


나이를 잊고 열정적이고 창의적인 삶을 사는 이들을 만날 때마다 그들의 자리에 나를 대입시켜 보곤 한다. 나도 모르게 먼저 떠오르는 부정적인 생각들.  매번 이 벽을 깨고 싶다는 열망을 갖지만 오랫동안 습으로 굳어진 탓인지 쉽지 않다. 완벽하게 할 필요가 없었다면 ( )을 시도했을 텐데라는 문장을 연달아 읽으면서 괄호 안에 들어갔다 그냥 묻혀버렸을 많은 꿈과 욕구들이 스쳐 지나간다. 그녀의 말처럼 창조적 존재로 태어난 나에게 "할 수 있어. 시도만 하면 돼!"라고 말하는 작은 속삭임에 귀를 기울일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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