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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은숙 Aug 13. 2022

멍 때리는 시간

지친 뇌를 충전하는 시간

며칠 전에는 배움에 올인하고 자기만의 세계에 빠져 사는 것은 외롭기 때문이라는 지인의 말에, 오늘은 친하게 지내는 언니가 대화중에 불쑥 던진 한 마디에 또 한 번 당황한다. 

"정 작가는 멍 때리는 시간이 필요해!" 

글쓰기를 좋아하는 나를 작가라고 불러주는 언니는 최근 들어 나의 일상을 속속들이 알고 있는 사람 중의 한 명이다. 그녀의 말은 아마도 요즘의 내가 쉼이 절실히 필요하다는 걱정이고 염려일 것이다.


끊임없이 무언가 하지 않으면 불안해하는 성정. 덕분에 책상에는 읽어야 할 책들이 쌓여있고, 머릿속은 해야 할 일의 우선순위를 정하느라 늘 바쁘다. 운전하거나 산책할 때도 예외는 아니다. 멍 때리고 해찰하기 가장 좋은 시간이지만 평소 골라둔 시를 외울 수 있는 절호의 기회로 여긴다. 때로는 오늘은 걷기에만 집중하자고 마음먹고 빈 손으로 나서지만 어느새 인터넷으로 외울 시를 검색하는 나를 발견하곤 한다. 그나마 뇌가 조금 쉬는 시간을 꼽는다면 직장에서 점심 식사 후 커피타임이나 좋아하는 소설이나 산문을 읽는 때가 아닐까 싶다.


언젠가부터 '멍'이란 단어를 많이 듣게 된다. 많은 사람들이 캠핑장에서 모닥불을, 해변에서는 바다를, 산에서는 숲을 바라보며 불멍, 바다멍, 숲멍을 때린다. 지친 자신에게 쉼의 시간을 선물하기 시작한 것이다. '멍 때리기'는 말 그대로 아무 생각 없이 멍하니 있는 상태다. 늘 바쁘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사는 현대인들은 그 시간이 간절할 수밖에 없다. 심지어 시간을 정해두고 누가 오래 멍 때리는지 시합하는 대회까지 있는 것을 보면 수많은 사람들이 뇌가 쉴 수 있는 시간을 일부러 정해서 실천해야 할 만큼 힘들고 지쳐있다는 것이다. 


몸이 피곤하거나 아프면 당연히 쉬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마음이나 뇌가 지쳤다는 사실은 잘 느끼지 못할뿐더러 번아웃의 지경에 이를 때까지 방치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나를 비롯해 많은 사람들은 가만히 있는 시간을 불안해하고 무의미하다고 여긴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은 뇌에 순기능을 한다. 사람의 뇌는 몸무게의 3% 정도에 불과하지만 몸이 사용하는 에너지의 20%를 사용한다고 한다. 햇빛이나 공기가 꼭 필요하지만 그 중요성을 의식하지 못하는 것처럼 뇌는 모든 일상생활과 밀접하게 연관된다. 비록 몸이 건강해도 뇌가 건강하지 않으면 정상적인 생활을 영위할 수 없는 것이다.


고기도 먹어 본 사람이, 노는 것도 놀아본 사람이 논다고 했던가. 끊임없이 무언가에 열중하는 것이 잘 살고 있는 것이고 열심히 사는 것이라고 믿으며 살아온 까닭에 노는 일에 익숙하지 않다. 더군다나 멍을 때릴 정도로 내 모든 것을 잠시라도 내려놓는 일은 여전히 어색하고 낯설다. 6개월간 불교대학에 다닐 때도 코 끝의 호흡에 집중하며 나를 내려놓은 명상 시간이 어려웠던 것도 아마 그래서였을 것이다. 하루에 단 10분이라도 지치고 힘들어 아우성치는 뇌를 쉴 수 있도록 충전하는 시간이 절실하다. 나에게 멍 때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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