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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은숙 Aug 14. 2022

카페를 선택하는 기준

수퍼 옆 카페를 좋아하는 이유

눈길만 돌리면 블록 하나 건너마다 가장 눈에 많이 뜨이는 간판 중의 하나가 바로 카페이다. 어느 즈음부터 밥을 먹고 나면 꼭 들려야 하는 곳이 되었고 남녀노소 모두에게 친숙한 공간으로  자리 잡았다. 새로운 카페 개업 소식을 들으면 일부러 찾아갈 정도는 아니지만 그 근처에서 회식이나 모임을 하게 되면 찾아가 보려고 하는 편이다. 어디는 인테리어가 좋아서, 어떤 곳은 창 밖으로 보는 뷰가 멋져서, 어디는 커피 또는 디저트가 맛있어서. 이런저런 이유를 들어 자주 찾는 곳도 있다. 하지만 인테리어가 근사하지도 커피맛이 특별나지 않아도 자주 찾는 카페가 있다. 슈퍼가 같이 딸려 있는 그 카페의 가장 큰 장점은 주차장이 넓다는 것이다. 또한 손님이 많지 않아 오붓하게 오랜 시간 머물러도 부담이 없고 커피값 또한 저렴하다.


한번 맘에 들면 질릴 때까지 찾는 편이어서 한동안은 멀리서 친구는 물론 동생들이 와도 매번 그곳을 찾곤 했다. 카페 문을 열면 바로 보이는 계산대에는 여느 카페처럼 쿠폰이 빨래처럼 널려있다. 차 열 잔을 마시면 아메리카노 한잔을 마실 수 있는데 오래된 단골임을 증명하듯 내 쿠폰 첫 장은 색이 바랬을 정도다. 얼마 전 여느 날처럼 두리번거리며 내 이름을 찾는데 카드에 적힌 별칭을 말하며 사장님이 나보다 먼저 찾아내 깜짝 놀랐다. 자주 들러 안면이 있지만 설마 별칭까지 기억하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지 못한 탓이다. 


얼마 전 구세대와 신세대 구별법을 듣고 웃은 적이 있다. 자주 들리는 편의점이나 식당, 카페에서 사장님이 기억하고 아는 척했을 때 반갑고 기분이 좋으면 구세대라는 것이다. 이른바 신세대들은 애용하는 편의점에서 사장 또는 알바가 아는 척을 하면 다음부터는 그곳을 찾지 않는단다. 타인이 나의 기호나 얼굴을 기억한다는 것 자체를 불편하게 여긴다는 것이 그 이유다. 이 얘기를 들으면서 나는 구세대가 맞는구나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불편해하기는 커녕 나를 기억해주는 사장님이 반가워 환한 얼굴로 말까지 건넨다면 더 말할 필요도 없다.


모처럼 연휴를 맞아 내려온 동생네와 엄마, 우리 가족까지 오랜만에 저녁 외식을 했다. 진한 국물이 푹 우러난 오리 누룽지백숙을 맛있게 먹고 그냥 헤어지기 아쉽다며 카페행을 제안한다. 유명 프랜차이즈 카페는 사람이 많고 좀 한적한 곳으로 가자는 의견에 바로 슈퍼가 딸린 그곳을 추천한다. 아마 지금 가면 손님이 없어 한적할 것이고 커피값도 싸다는 설명을 덧붙인다. 비 내리는 날씨 탓인지 차를 주문하고 올라간 이층 카페는 인적이 없어 에어컨 바람이 싸늘해 한기가 느껴질 정도다. 오늘도 우리가 전세 낼 수 있겠네 하며 편안하게 자리를 잡고 시원한 수다를 이어간다.


몇 개월 전 이 카페 옆에 대형식당과 카페가 들어섰다. 슈퍼 건물에서 성인 발걸음으로 스무 걸음도 안될 만큼 아주 가까운 거리다. 그즈음 동료들과 그 근처에서 시래기밥을 먹고 차를 마시기 위해 사방이 확 트인 통창을 통해 내부가 훤히 들여다보이는 새 카페로 향했다. 슈퍼 옆 카페 앞을 지나는데 오래된 친구를 배신한 것처럼 괜히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앞으로도 여전히  멋지고 뷰가 좋은 신상 카페들을 만나면 살짝 갈등하겠지만 슈퍼 옆 작은 카페는 편안하고 오붓하게 이야기를 나누고 싶을 때 잊지 않고 찾는 따듯한 장소가 될 것이다. <불편한 편의점> 소설 속 손님들은 다양한 품목도 없고 찾는 물건들이 없어 매양 불편하다고 말하면서도 마음이 머물고 사연이 오가는 그곳을 습관처럼 찾는다. 나 또한 맛깔스러운 디저트나 그곳만의 시그니처 메뉴도 없지만 창 밖으로 눈을 돌리면 오랜 세월을 이야기해주는 느티나무 한그루가 있고, 해 질 녘 노을이 이쁜 슈퍼 옆 카페를 애용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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