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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은숙 Aug 25. 2022

한여름밤 졸업 이벤트

낭독으로 배우는 세상

오후 7시 30분 낭독 수업을 앞두고 갑자기 단톡방이 수런거린다. 이내 동기들이 하나 둘 줌으로 접속한다. 1년 8개월 동안 배움을 함께 이어 온 동기들 중 반장 언니는 반짝거리는 크리스마스트리를 화면에 세우고 우리들은 일사불란하게 가상 배경에 있는 비디오 필터에서 학사모를 선택한다. 지난 5월부터 매주 월요일마다 이어온 줌 낭독 마지막 수업 날. 열정 그녀의 제안으로 우리는 선생님을 위한 감사의 마음과 낭독에 대한 애정을 듬뿍 담은 영상과 늘 뜨거운 마음으로 이끌어 주신 선생님을 위한 시낭송을 준비했다.


드디어 수업 시작. 입장하자마자 선생님의 얼굴이 환해진다. 이내 줌 화면 속에서 학사모를 쓰고 밝게 웃는 우리들 모습에 웃음을 터트리신다. 일단 성공이다. 이어 반장 언니의 자연스러운 진행으로 우리들만의 졸업식 이벤트가 시작된다. 나태주 시인의 <사랑에 답함> 시낭송이 시작되자 이내 눈물이 번지고 그녀들의 진심이 묻어나는 영상에 선생님은 폭풍눈물. 선생님의 매력 철철 넘치는 흥겨운 댄스로 마무리되는 영상을 보면서 이쁜 왕눈이 선생님과 낭독 동기들은 오늘도 울다가 웃고 웃다가 또 눈물을 흘렸다.


정현종 시인의 시구처럼 사람이 온다는 건 참 어마어마한 일이다. 코로나19라는 특수한 상황에서 줌 낭독 수업을 통해 너무도 소중하고 귀한 선생님과 그녀들을 만났다. 코로나는 인류에게 물론 우리에게도 페스트처럼 큰 재앙이지만 이렇게 멋진 선물 하나를 안겨준 것이다. 대학 선배 소개로 현직 성우들이 진행하는 줌 낭독 강의를 알게 되었다. 그렇게 시작된 그녀들과의 인연은 햇수로 2년째를 맞고 있고, 그녀들과의 애정의 깊이도 하루하루 더 돈독해져가고 있다. 


거의 세 시간가량 진행되는 수업. 선생님이 이름을 호명하면 식은땀이 나기 시작하고, 티칭과 코멘트까지 듣고 나면 어느새 코밑과 겨드랑이는 축축해지고 만다. 게으름을 피우면서도 매주 녹음 과제를 제출하고 지적받을 때마다 포기라는 단어를 떠올리기도 하지만 갓난아기가 걸음마를 배우듯 한발 두 발 걷는 법을 배워가고 있다.


여전히 서툴고 어렵기만 한 낭독의 세상. 멋진 선생님들에게 단순히 책을 읽는 기술이 아니라 삶을 대하는 태도와 자세를 함께 배운다. 그냥 텍스트를 읽는 것이 아니라 인생을 읽고 나를 읽으면서 날마다 조금씩 자란다. 덕분에 세상을 살아가는 지혜와 사랑하는 법도 더불어 배우고 있다. 성큼성큼 나아가지 못한다고 조급해할 필요도 없고 내 목소리가 투박하고 엉성하다고 실망할 이유도 없다. 책과 사람, 그 둘은 나란히 가는 것이며, 우리 또한 자박자박 걷다 보면 어느 날 그레구아르처럼 아름드리나무로 자라날 것이라 믿으니까. 늘 겸손하고 따듯한 선생님과 밝고 환한 기운을 가진 어여쁜 그녀들 덕분에 올여름도 다정하게 기억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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