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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은숙 Aug 23. 2022

나만의 퀘렌시아

그녀와 삼계죽 먹던 날

네비를 켜고 출발해도 매번 톨게이트를 빠져나와 동네를 찾아가는 동안 한번, 다시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는 

인터체인지로 진입할 때까지 한번, 꼭 두 번은 헤매다가 찾아가는 곳. 그녀에게 가는 길은 늘 가깝고도 멀다. 1시간 남짓 거리임에도 동행하는 친구와 일정을 조율하다 보면 일 년에 간신히 두어 번 만나게 된다.


빗소리로 착각해 창 밖을 내다보게 하는 실개천이 부지런히 흐르고 부부가 정성스레 심었을 봉숭아, 코스모스, 서광 꽃이 환한 미소로 반겨주는 그곳. 아기 고양이 딸기와 초코는 수돗가에 놓여 있는 화분 사이를 정신없이 누비고, 듬직한 장군이와 월이는 조심스레 다가와 눈빛을 건넨다.


한 시간 넘게 헤맨 끝에 달려간 친구 집에서 우리가 하는 일은 딱 두 가지뿐이다. 그녀가 우리를 위해 준비한 건강한 밥과 후식을 먹고 셋이 끝도 없는 폭풍 수다를 떠는 것이다. 이번에 들었던 불교대학 경전반이 좋았다는 근래 본인의 마음 동향부터 가족 이야기와 직장에서 어려움들까지. 한동안 묵언 수행하며 동굴에서 살았던 외로운 사람들처럼 밀린 이야기들을 주거니 받거니 웃고 떠들다 보면 서너 시간이 훌쩍 지나간다.


이번 점심 메뉴는 튼실한 토종닭에 낙지와 직접 채취했다는 송이까지 넣어서 한 시간 넘게 푹 끓인 삼계탕. 먹기 좋게 소분하라는 말에 동행한 친구는 푹 삶아진 닭을 완전히 분해했고 우리는 결국 닭죽 삼계탕을 맛있게 먹었다. 그렇게 여유로운 일요일 오후는 물컹한 황도와 잘 익은 거봉포도처럼 달달하게 우리 안에 오롯이 스며들었다.


"담에는 그냥 훌쩍 와~"

굳이 날짜를 정하지 말고 시간 날 때 그냥 오라는 그녀의 한마디에 가슴이 따스해진다. 분명히 친구인데 그녀와 대화를 나누다 보면 나보다 한참 세상을 더 살아낸 언니 같다. 작은 일에 연연하며 동동거리는 모습을 볼 때마다 조급할 것도 미리 걱정할 필요도 없다고 말해주는 그녀. 직접 밭에서 키운 싱싱한 채소와 산에서 채취한 나물로 밥상을 차려주고 매번 말린 고사리, 청귤청, 장아찌까지 친정엄마처럼 들려 보낸다. 이번에는 아이들이 김치볶음밥을 좋아하는데 묵은지가 떨어졌다는 친구 말에 김장김치 한통을 챙겨 준다. 


몸과 마음이 지치고 두 어깨 가득 지고 다니던 짐을 하루쯤 내려놓고 싶을 때, 상상만 해도 그냥 미소가 떠올려지는 나만의 퀘렌시아가 있다는 것은 얼마나 다행스럽고 행복한 일인지. 매번 귀찮을 법도 한데 싫은 내색 없이 환한 얼굴로 반겨주는 그녀 덕분에 새로운 한 주도 살아갈 힘을 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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