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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은숙 Aug 21. 2022

아들 오는 날

가족, 그 소중한 이름

"집에 언제 온대"

"안 내려온 지 한참 된 것 같은데"

남편과 딸은 이따금 나에게 묻곤 한다. 네 식구 중 유일하게 타지에 사는 아들이 보고 싶다는 애정표현이자 집에 오지 않은 날이 한참 지났다는 뜻이다. 대학에 입학하면서 독립한 아들이 집에 내려오는 횟수는 해를 거듭할수록 자꾸 줄어든다. 취업준비에 바빠지면서 짬을 내기 어려워진 탓이다.


모임에 갔다가 기차 도착시간에 맞춰 그를 마중가는 길. 역전에 차가 길게 늘어서 있다. 사고가 난 건가 하고 창밖을 내다보니 비상등을 켠 채 나처럼 누군가 기다리는 차들의 행렬이다. 길 건너에 백팩을 메고 한 손에는 종이 가방을 들고 있는 그가 눈에 들어온다. 밤 열 시가 다 되어가는 시각. 무려 넉 달만에 모자 상봉이다.


헐렁한 남방에 바지. 영락없는 고등학생 옷차림이다. 이유를 물었더니 나이도 어린데 너무 어른처럼 입지 않아도 된다는 상사의 조언을 들은 뒤로 좀 더 어리게 입고 다닌다고 말한다. 본격적인 직장생활을 시작하기 전에 여행도 많이 다니고 놀기도 해야 한다는 말을 자주 듣는데 안정적인 궤도를 찾은 후로 미루겠다고 대답했다는 말에 마음이 짠해진다. 오랜 사회경험에서 우러난 그들의 말에 나 또한 공감하기 때문이다. 노력해도 바라는 대로 되지 않는 것이 많은 현실, 너무 앞만 보고 달려가면 쉽게 지치지 않을까 하는 괜한 염려도 앞선다.

 


드디어 집에 도착. 가족들의 목소리 톤이 높아진다. 꽃 중에 사람꽃이 제일이라고 했던가. 남편과 딸이 모진 겨울을 이겨내고 곱게 피어난 매화꽃을 본 듯 환한 얼굴로 그를 맞는다. 늘 변함없는 집안을 둘러보는 그의 눈길도 사뭇 부드러워진다. 집에만 오면 자꾸 졸음이 온다고 말하는 그. 타지에서 혼자 생활을 꾸려가면서 늘 긴장하던 마음이 풀린 탓에 자꾸 잠이 쏟아지는 것이리라. 자주 통화하고 카톡도 주고받으니 할 말이 없을 듯한데 방에서는 남매의 대화가 오래도록 이어지고, 나 또한 그를 위해 무엇을 할까 고민하는 시간이 즐거워 밤 11시를 훌쩍 넘긴다. 


누구보다 가장 가깝고 친밀하다고 여기는 가족. 멀어지면 오히려 남보다 못하기도 한 사람들. 늘 곁에 있다고 믿는 까닭에 때로는 그 귀함과 소중함을 잊고 사는 이름. 항상 지지해주고 다정하게 응원해주는 존재. 때때로 아무것도 아닌 말로 서로 상처를 주고받지만 봄눈 녹듯 금세 잊어버리는 따뜻한 자리. 


늦은 밤, 아들이 역에서 사 온 호두과자를 먹으며 달달하고 따듯한 가족의 의미를 떠올려보는 여름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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