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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은숙 Aug 20. 2022

'후에'가 '후회'된다

제2의 삶에 대한 준비

코로나19 확진자가 하나 둘 늘어나고 여름휴가까지 겹치면서 사무실이 썰렁하다. 점심은 보통 팀별로 먹지만 오늘은 인원이 적어 부서 내 다른 팀원들과 함께 식사를 했다. 메뉴는 부대찌개. 소시지, 햄 등 가공육이 들어간 음식이라 선호하지 않지만 모처럼 맛있게 먹었다. 다음 코스는 얼마 전 사무실 신청사에 문을 연 카페. 장애인 단체에서 운영하는 곳으로 다양한 신간들을 갖춘 북카페가 딸려 있고 공간이 널찍해 손님이 제법 많았다.


오늘 대화 주제는 '여가생활'. 끈기가 부족해 기타를 배우다 그만두고 자전거와 운동을 즐긴다는 얘기부터 대학시절 노래패 활동을 했던 기억을 떠올리며 피아노를 배우고 싶은데 아이들이 어려 시작을 못하지만 언젠가는 진짜 좋아하는 취미활동을 하고 싶다는 이야기까지. 대화의 흐름이 자연스레 퇴직 후의 삶까지 흘러간다. 서로의 시행착오와 바람에 대한 대화가 무르익을 무렵 40대 중반 직원이 말한다. "그런 말 있잖아요. '후에'한다고 하다가  '후회'한대요"라고. 단어의 조합도 절묘하지만 격하게 공감되는 문장이다.


직장을 다니면서 가끔 떠올리는 기분 좋은 상상 중의 하나는 어느 날 갑자기 사표를 내고 사무실을 훌훌 떠나는 것이다. 그동안 여러 고비를 지나다 보니 벌써 노안을 걱정하는 중년의 나이가 되었고 퇴직하는 선배들을 볼 때마다 눈치 없이 나도 모르게 '부럽다'는 말이 튀어나온다. 현직에서는 그만두고 싶다는 말을 누구보다 많이 했을 그들이 퇴직 무렵이 되면 내비치는 아쉬움 가득한 서운한 눈빛이 아직은 이해불가다. 아마도 퇴직 이후 180도 달라지는 낯선 삶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 아닐까 짐작해 볼 뿐이다.


나 또한 나이가 들면서 자연스레 퇴직 후 삶에 대한 고민을 하게 된다. 아침 알람 소리에 긴장하지 않아도 되고 비가 오면 빗소리를 듣고, 눈이 오면 눈을 보면서 근사한 카페에서 편안하게 차를 마시는 상상을 할 때는 입꼬리가 자동으로 올라간다. 의무적으로 출근해야 할 곳이 없다는 사실은 너무 즐겁지만 운 좋게 퇴직 이후 짧게는 10년, 길게는 30년을 더 살게 된다면 하는 대목에 이르면 마음이 복잡해지는 것이다. 


퇴직하면 좋은 것은 처음 딱 세 달뿐이라며 철저한 대비를 해야 한다고 조언하는 선배들이 다수인 걸 보면 아마도 제2의 삶을 위한 노후준비는 선택이 아닌 필수조건인 듯하다. 철저한 준비를 위해서는 삶의 방식에 대한 변화나 전환을 위한 계기가 필요할 것이다. 새로운 분야의 일에 도전하고 싶다면 자격증을 준비하거나 평생교육원에 다녀야 하고, 전원생활을 꿈꾼다면 세컨드 하우스를 마련해야 할 것이다. 물론 우연히 시작한 여가생활이 제2의 인생을 위한 시발점이 되는 경우도 있다.


아예 관심이 없거나 막연하게 걱정만 하는 이들도 있지만 차근차근 노후 준비를 해온 선배들은 퇴직 후에도 여전히 멋진 일상을 보낸다. 열심히 글을 쓰고 문학 관련 활동을 하면서 시집을 출간하거나 다양한 배움으로 삶을 채우고, 종교활동과 봉사로 보람을 찾기도 한다. 평소 하고 싶은 일을 하는 선배들의 공통점은 항상 생기가 돌고 얼굴 표정이 환해 보인다는 것이다. 간혹 후배들을 만나면 노후생활에 대한 꿀팁 전수는 물론 밥도 잘 사주신다. 


자신에게 주어진 책임과 의무를 다하기 위해 열심히 살아온 젊은 시절의 삶을 마치고 새롭게 맞는 퇴직 이후의 제2의 삶. 아직은 먼 훗날인 듯 실감 나지 않는다. 좋아하면서도 하지 못했던 일, 가고 싶었지만 가보지 못한 길이 있다면 겁내지 않고 완벽하지 않다고 미루지 않기를 바란다. 청소년 시절 바라고 꿈꾸던 일을 나이가 들어서 하고 있는 자신을 만나는 것이 진정한 성공이라고 말하는 어느 노시인의 말처럼 자박자박 한 발자국씩 내딛을 수 있도록 내 가슴이 꿈꾸고 바라는 일들에 귀를 기울이고 고민해볼 때이다. 후에 한다고 미루기만 하다가 결국 후회하지 않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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