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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은숙 Aug 18. 2022

당신 휴대전화에 내 이름은?

미움도 보듬으면 노래가 된다

왕비, 공주, 애인, 이쁜 마님, 남의 편, 아들, 엄마, 웬수.....

오랜만에 만난 지인과 대화 중 휴대전화에 아내 별칭을 '독버섯'이라고 저장해 둔 친구 이야기를 듣고 한참 웃었다. '헉'이라는 말이 나오기도 하지만 그렇게 저장한 그의 마음, 전화를 걸거나 받을 때 기분이 궁금해졌다.


나는 그 또는 그녀들을 휴대전화에 저장할 때 어떤 기준을 적용하고 있을까. 보통은 전체 이름을, 어떤 이는 이름 뒤에 직책이나 소속 단체를 넣기도 하고 좀 친하다고 여기는 이들은 성을 빼고 이름만 입력하기도 한다. 동명이인은 혼동을 막기 위해 직장이나 부서명을 함께 저장한다. 가족의 경우에도 성격처럼 단순하게 '엄마'. '아들' 또는 이름을 소리 나는 대로 입력하는 정도다.


 의미와 관계없이 이름 석자가 아닌 별칭으로 저장한다면 좋고 싫음에 상관없이 상대방과 관계가 깊거나 관심이 많다는 것이다. 아예 관심이 없다면 입력을 안 하거나 차단할 수도 있고, 굳이 공들여 별칭을 고민할 필요도 없을 테니 말이다. 물론 예외도 있을 것이다. 아주 가까운 가족이나 직장 동료라서 불가피하게 연락하고 만날 수밖에 없지만 너무 밉고 싫은 관계처럼.


내 지인들은 휴대전화에 나를 어떤 이름으로 저장했을까 궁금해지는 대목이다. 짐작컨대 이름 석자가 제일 많을 듯하고 좀 친근하거나 편안한 사이라면 성을 빼고 이름만 입력했을 것이다. 급 궁금해진 것은 혹여나 나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누군가의 폰에 저장된 이름이다. 하지만 상상하지도 묻지도 않기로 한다. 알아내기도 어렵겠지만 혹여나 상처받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세상 모든 사람이 나를 좋아하기를 바라는 것은 헛된 욕심이자 불가능한 일이지만 사회생활을 하면서 웬만하면 불편한 관계는 만들지 않으려고 애쓴다. 매년 상하반기 정기인사가 있고 짧게는 1~2년마다 부서이동이 이뤄진다. 많이 만나는 이들은 3~4번까지 같이 근무하기도 한다. 언제 어떻게 인연의 끈이 닿아 다시 만날게 될지 장담할 수 없는 것이다.


불가피하게 누군가를 미워할 때도 있지만 그것 또한 쉬운 일이 아니다. 그를 미워하기 위해 나의 많은 에너지를 소비하는 것은 물론 그 기간 동안 나 또한 불행하고 힘든 시간을 견뎌야 하기 때문이다. 이쁘게 보면 이쁘지 않은 것이 없고 밉게 보면 밉지 않은 것이 없다고 했던가. 사랑하며 살기에도 짧은 인생. '미움도 보듬으면 노래가 된다'는 이기철 시인의 시구처럼 조금씩 이해하고 배려하다 보면 누군가가 나를 '독버섯'이라고 입력하는 불상사는 피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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