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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은숙 Sep 06. 2022

진짜와 가짜 사이

필명에 대한 고민 

타인에게 공개되는 공간에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새로운 고민이 생겼다. 사사로운 가정사나 본인이 한 말까지 이야깃거리가 되는 것을 부담스러워하는 가족이 생겨났고, 나 또한 노출 범위가 조심스러워진 탓이다. 자유롭게 글을 써서 차곡차곡 비공개 카페에 넣어 두었을 때는 전혀 예상치 못한 일이다.


누군가 내가 쓴 글을 읽고 조회수가 올라가는 일이 신기하게 여겨지는 일도 잠시. 어느 수준까지 나를 보여줘야 하는지, 또 누군가가 나를 알게 된다는 사실 자체가 부담스러워진 것이다. 그때부터 필명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운 좋게 처음 도전해 작가 승인을 받은 날, 프로필 소개란을 정성스레 채우고 실명과 사진까지 업로드한 후  '오늘부터 1일'이라는 글을 쓸 때 가슴이 얼마나 설레었던가.


내 서랍 속에서 잠만 자고 있던 글들 중 몇 편의 조회수가 3~4만까지 올라가는 알림톡을 받기 시작하면서 갈등하는 횟수가 더 늘어났다. 나를 자연스럽게 그냥 내보이는 것이 적정한 것인지, 익명의 누군가가 되어 좀 더 자유롭게 글을 쓰는 것이 바람직한 것인지 저울질을 하게 된 것이다. 그 상황에서 할 수 있는 일은 평소 내 성향과 기호를 들여다보고 좋아하는 단어와 이름을 떠올리며 검색해 보는 것. 그리고 지인과 가족들에게 나와 어울리는 멋진 필명을 추천해달라고 조언을 구하는 일뿐이었다.


오후 내내 태풍 소식을 전하는 비바람보다 머릿속과 손가락은 더 어수선하고 분주했으나 여전히 맘에 드는 필명도 마음의 결정도 하지 못했다. 어제 써서 서랍에 넣어둔 글도 하룻밤 더 잠을 자야 할 처지에 놓인 것이다.

밤늦게 든든한 응원군인 아들에게 속내를 털어놨더니 한마디로 명쾌하게 상황을 정리해준다.


  "난 엄마 현재 이름이 엄마랑 가장 어울린다고 생각해. 작가명은 그냥 실명으로 쓰고 프로필 사진만 바꾸면 어떨까" 


곰곰이 생각해보니 괜찮은 제안이다. 어차피 내 이름은 흔하디 흔한 이름이라 조직 내에서도 동명이인이 숱하다. 눈치 빠른 누군가는 알아챌 수 있겠지만 그것까지 염려하고 싶지 않다. 아들 말대로 소개글만 좀 간단히 정리하고 사진만 실물로 넣지 않아도 무방할 듯하다. 얼마간의 시간이 흐른 뒤 또 마음이 바뀔지도 모르겠지만 결론적으로 내 고민은 그렇게 일단락되었다.  진짜와 가짜 사이. 늘 우리는 그 안에서 오르락내리락 시소를 타며 살고 있음을 다시 한번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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