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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은숙 Sep 04. 2022

가을 자두는 달다

따듯한 시누이의 마음 

과일을 좋아해 이른 봄 딸기를 시작으로 참외, 복숭아, 살구, 사과, 자두까지 웬만한 종류는 다 챙겨 먹는다. 제철을 맞기 전 먹고 싶은 충동을 못 참아 비싼 값으로 사 먹을 때도 있다. 엄마는 매년 집 앞 오래된 살구 나뭇가지가 무거워질 무렵이면 신맛을 좋아하는 딸을 떠올리며 꼭 챙겨놓으실 정도다. 나이가 먹으면서 취향도 바뀌는지 예전엔 딱딱한 백도를 좋아했는데 올해는 노랗고 물컹대는 황도 맛에 반해 한동안 입에 달고 살았다. 코로나 확진으로 입맛을 잃었을 때는 식사대용으로 먹을 정도였다.


얼마 전 동갑내기 시누이가 자두를 좀 많이 샀다며 보내왔다. 좀 새콤한 맛이 강해 다른 가족들이 먹지 않아 오롯이 내 차지가 되었고 혼자 아침, 저녁으로 먹곤 했다. 며칠이 지난 후 그녀는 자두를 또 구입했다며 좋아하면 챙겨가라고 전화를 걸어왔다. 가을 자두라 지난번 것 보다 훨씬 맛있을 거라며 어른 주먹만 한 자두 20개를 비롯해 포도와 호두가 들어있는 약밥까지 쇼핑백 가득 넣어주었다.


중학교 동창이기도 한 그녀는 손이 크다. 이번만 해도 자두를 15만 원어치나 구입했다고 한다. 실상 그녀가 먹는 양은 별로 없다. 어머니를 비롯해 형제들이나 지인에게 나눠주는 것을 더 좋아하는 탓이다. 마음이 따듯한 성정이라 주변에 친구들도 많아 어려운 일이 생기면 너도 나도 그녀를 챙긴다. 밥을 못 먹는다고 하면 죽을 쒀서 갖다 주고 김치나 반찬은 물론 떡과 과일까지 품목도 다양하다. 그때마다 그녀는 그 마음들을 고마워하며 늘 받은 것보다 더 넉넉하게 베풀곤 한다.


결혼할 때 시누이가 6명이라는 말에 엄마는 깜짝 놀랐다. 한 마디씩만 거들어도 여섯 마디라며 고된 시집살이를 염려했다. 하지만 20여 년 넘는 결혼생활을 하면서 그녀들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거나 힘들었던 기억은 별로 없다. 아마도 모두 성정이 온화하고 형제간 우애가 돈독한 덕분일 것이다.


오늘도 저녁 대신 자두 하나를 맛있게 먹었다. 한동안 붉게 잘 익은 자두를 먹을 때마다 그녀의 따듯한 마음이 떠오를 것이다. 힘든 시간을 잘 이겨내고 다디단 맛으로 행복을 선사하는 가을 자두처럼 어두운 터널을 지나고 있는 그녀의 무거운 시간들도 환한 봄꽃처럼 밝고 다정한 시간들로만 채워지길 기도한다. 가을 자두는 참 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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