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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은숙 Sep 07. 2022

헤어지는 중입니다

부서가 없어지면 생기는 일

12년 만에 또 겪는 일이다. 조직개편 소문이 돌기 시작한 것은 몇 달 전부터이다. 그때만 해도 설마 설마 했던 일이 현실이 되었다. 근무하는 부서가 없어지는 것이다. 더구나 팀까지 통폐합되어 3개 팀이 2개 팀이 되고 부서도 나누어질 예정이다. 개편안이 나오면서 만나는 사람마다 어느 부서로 가는 거냐고 묻는다. 미리 알려주지도 않을뿐더러 예측이 불가하니 그저 어색하게 웃을 뿐이다. 같은 질문이 반복되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는 마치 갈 곳을 잃은 어린 양이라도 된 것처럼 심난해진다.


현재 부서에 근무한 지 1년 4개월.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이다. 매일 아침 커피를 마시며 일상을 나누고 점심시간이 되면 밥을 먹고 금요일 아침에는 사무실 청소를 하고. 어떤 날은 간식을 먹기도 하며 말 그대로 식구 같은 동료들. 20대부터 정년을 앞둔 50대 후반까지 다양한 연령층이 근무하는 곳이다 보니 개성도 성향도 제각각이다. 특별히 튀는 사람도 유별난 성격의 소유자도 없는 덕분에 무탈하게 지낼 수 있었음에 감사할 뿐이다.


인사 시점이 다가오면서 이별 여행(?) 의견이 나왔고 인근 지역으로 당일치기 일정을 잡았다. 여행 코스와 점심 메뉴를 고민하던 중 예상하지 못한 태풍 소식에 방향을 급선회했다. 사무실 근처에서 조조 영화를 보고 맛있는 점심과 커피를 마시는 일정이다. 아쉬운 결정이지만 함께한다는 것에 의미를 두었고 그렇게 우리는 만났다.


태풍전야인 탓일까 유난히 하늘이 푸르고 바람도 선선하다. 이런 날 연인과 이별해야 한다면 눈물 날 것 같은 화창한 날씨다. 주말에 별도로 시간을 내 영화를 보고 밥을 먹는 일이 오늘따라 특별하게 여겨진다. 촌스럽게 보일 수도 있지만 영화관 간판 앞에서 단체 사진도 찍고 소주잔에 콜라를 나누어 마시며 건배도 한다. 커피값이 비싸지만 뷰가 좋다고 소문난 카페 야외 테라스에서 평소보다 한 톤 높은 목소리로 대화하면서 박꽃처럼 환하게 웃으며 시간을 보냈다.


만남이 있으면 반드시 헤어지기 마련이다. 본인 의지에 의해 헤어지기도 하지만 이렇듯 의지와 관계없이 이뤄지기도 한다. 다행스럽다면 우리는 영원히 볼 수 없는 곳으로 떠나는 것이 아니라 한 지붕 아래에 있기에 마음만 있으면 언제든지 만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일단 부서가 바뀌고 나면 소원해질 수밖에 없다. 서로 바쁘기도 하고 업무 연관성이 적어지면 볼 수 있는 기회가 자연스레 줄어들기 때문이다.


비건을 실천하고 마음공부에 진심인 그, 말투는 틀림없이 선머슴 같은데 알고 보면 마음이 따듯한 그녀. 손이 커서 아들 소풍 가는 날이면 늘 푸짐하게 김밥을 챙겨 오던 팀원, 같이 근무한 지 두 달 밖에 안됐는데 또 헤어져야 하는 그와 그녀. 시사상식부터 정치, 경제까지 두루 박식한 만물박사. 한 사람씩 떠올려보니 그들과 함께한 시간들이 더 귀하고 소중해진다. 섭섭한 마음도 밀물처럼 밀려온다. 


이별은 늘 서운함을 동반한다. 아마도 각자 새로운 부서로 떠나게 되면 그동안 나눈 시간들은 물론 오늘 함께한 소소한 이벤트는 다정한 추억으로 갈무리될 것이다. 두어 시간 넘게 함께 영화를 보며 팝콘을 먹었던 영화관을 지날 때, 같이 밥을 먹고 차를 마셨던 공간에서도 그들의 얼굴과 웃음소리가 떠오를 것이다. 그들의 건승과 안녕을 기원하며 모임 인증 사진에 '함께한 시간, 오래 기억할게요'라고 써 부서 톡방에 공유하고 나니 헤어짐이 좀 더 실감 난다. 헤어짐은 아무리 연습해도 익숙해지지 않는 애틋한 일이다. 우리는 지금 헤어지는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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