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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은숙 Sep 20. 2022

왜 이렇게 늙었어?

잘 늙어간다는 것

2년 반 만에 이뤄진 동문 모임. 모처럼 최고참 선배들을 비롯해 10여 년 후배까지 함께한 자리다. 유기농 농사를 지으며 평소 효소, 면역 등 건강 관련 상식이 풍부한 선배와 옆자리에 앉게 되었다. 한참 대화를 나누던 중 내 얼굴을 빤히 바라보던 선배가 던진 한마디가 비수로 꽂힌다. "몸이 좀 안 좋은 건가. 2년 동안 왜 이렇게 늙었어"


건강을 챙기느라 음식을 조절하고 있고 덕분에 체중도 좀 줄었노라고 대답하면서도 못내 서운한 마음이 들고 당황스럽다. 그 이유가 아니라도 얼굴을 본 것이 햇수로 3년 만이니 나이가 먹은 만큼 더 늙은 것은 당연지사. 게다가 살이 빠지면서 얼굴살이 더 줄었으니 주름 또한 도드라졌을 것이다. 그의 말은 후배를 충격받게 할 의도는 전혀 없었을 것이다. 다만 핼쑥한 모습과 차가운 손이 염려스러워 던진 말이다.


40대를 넘길 때까지는 그래도 괜찮았다. 아니 버틸만했다. 나이를 먹는다는 것을 인정하는 일이. 가파른 40대를 넘어서 50고개를 넘는데, 아니 인정하는데 3년 정도 걸린 것 같다. 매년 똑같은 나이를 주장하는 나에게 아이들은 가끔 "엄마 도대체 몇 살이야"라고 물을 정도였다. 그렇게 고비를 넘기고 난 후 이제 나이를 먹는 일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다고 여겼다. 그런데 여전히 마음은 '늙었다'라는 말을 수용하기가 쉽지 않았나 보다.


늙음은 많은 일들을 동반한다. 나이라는 숫자와 주름의 개수만 늘어가는 것이 아니다. 노안이 오고 근육도 줄어든다. 같은 음식을 먹어도 맛이 덜하고 감정표현이나 느끼는 일도 자꾸 무뎌진다. 물론 사람마다 차이는 있을 것이다. 누구 말대로 우리는 열정이 줄어든 것이 아니고 다만 체력이 떨어진 것일 뿐일지도 모른다.


거울 앞에서 얼굴을 자세히 들여다본다. 팔자 주름도 깊게 파이고 피부는 나날이 까칠해진다. 안 빠져도 되는 볼살은 왜 이리 자꾸 빠지는지. 의학의 힘을 빌리면 되지 않냐고 물을지 모르지만 그렇게까지 하고 싶지는 않다. 


하루하루 더 주름살은 늘어나고 깊어지겠지만 내가 두려운 것은 외형적인 노화보다 삶에 대한 열정이 줄거나 식는 일이다. 여전히 무언가 배우고 시작하는 것을 좋아하고 체력이 방전될 것을 염려하는 상태인 것을 보면 잘 나이 들어가고 있다고 믿는다. 다음에 만났을 때 선배가 똑같은 질문을 던진다면 당황하거나 속상해하지 않고 당당하게 대답하는 나를 상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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