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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은숙 Sep 30. 2022

똥손의 종이접기

종이 왕관을 만들었다

학창 시절 친구들이 종이학을 만들어 소원을 빌고 좋아하는 사람에게 선물할 때도, 심지어 아이 둘을 키우면서도 한 번도 종이접기를 해 본 기억이 없다. 어려서부터 만들기에 젬병이었고 나 스스로 인정한 똥손인 탓이다.


얼마 전 평생학습관에서 동화구연 강좌가 있다는 말에 호기심이 발동해 신청했다. 접수는 해 놓고 내심 안됐으면 하는 맘이 컸는데 덜컥 개강 알림 문자가 왔다. 드디어 첫 수업,  강의 계획서에는 예상대로 도구 제작과 손유희 동작 배우기 등이 다수 포함되어 있었다.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똥 손'도 가능한 과정인지 여부를 묻자 강사님은 아주 상냥한 표정으로 걱정할 것 없다고 쿨하게 대답했다.


하지만 우려는 첫 시간부터 현실이 되었다. 아주 간단한 접기도 따라 하기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다행스러운 것은 손재주가 좋은 후배가 짝꿍이 되었다는 것. 첫 수업을 함께 들은 지인은 야간 강좌가 피곤해 아무래도 어렵겠다며 수강을 망설일 때 나는 과연 손유희는 물론 만들기를 잘 따라 할 수 있을까를 심각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다. 두 번째 시간. 강사는 발성연습을 교대로 시키는 것은 물론 매 시간 색종이와 가위, 풀을 지참할 것을 공지했다.


오늘 미션은 어린이들이 제일 애정 한다는 종이 왕관 만들기. 색종이 7장을 받자마자 당황했고 눈동자를 재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오늘 할 일은 색이 다른 색종이 7장을 다이아몬드 모양으로 접어 풀로 연결한 후 반짝이 스티커를 붙여 나만의 왕관으로 예쁘게 꾸미는 것. 손재주 좋은 짝꿍을 곁눈질하며 서두른 덕분에 가까스로 종이 왕관을 완성할 수 있었다.


누군가는 사람의 이름이 꽃이 되는 걸 아는데 쉰 해를 보냈다고 하는데 나는 색종이로 멋진 왕관을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을 쉰 해 만에 알게 된 날이었다. 애들 키울 때도 한 번도 안 해본 일이라고 너스레를 떨자 다른 청강생도 "다들 자기 자식 키울 때는 안 한다"라고 화답한다. 앞으로 남은 8회 차 동안 똥 손의 한계를 어디까지 극복할 수 있을지 궁금해지는 날. 동화구연은 단순히 목소리로 이야기만 전달하는 일이라고 쉽게 생각했던 것 또한 큰 오산이었음을 배운다.


난생처음 해보는 일이 앞으로도 얼마나 있을까. 그것은 아마도 여전히 내가 무언가 새로운 일에 도전한다는 의미일 것이다. 매번 조금은  망설이고 때론 포기도 하겠지만 나를 위해 새롭게 시작할 수 있는 작은 열정이 내 안에 남아있기를 소망한다. 밤 9시가 넘어 수업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과제 덕분에 대출한 그림책들 때문에 어깨는 묵직한데 왠지 발걸음은 가볍다. 올 가을은 동심 가득한 동화들 덕분에 마음이 좀 더 따듯해지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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