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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은숙 Oct 01. 2022

느리게 그리고 천천히

모처럼 휴일 아침이 편안하다. 싱싱한 방울토마토와 배, 키위, 애정하는 꼬마김밥으로 아침을 먹는다. 오전에는 동료 자혼을 갈 예정이었고 오후에는 사무실 출근과 문학관 수업까지 하루 일정이 빼곡한 날이었다. 왕복 시간을 따져보면 다 소화할 수도 있는 일정이지만 이건 아니다 싶어 일정 두 개를 정리했다. 결혼식은 봉투만 전하기로 했고 빠듯하게 시간이 지나 도착하게 될 수업도 이번 주는 빠지기로 한 것이다. 


코로나19로 웬만한 행사와 모임이 다 취소되던 즈음이 그리울 지경에 이르렀다. 주말마다 일정이 빼곡해지기 시작하고 주중에도 들어야 할 수업과 강의가 많아 피곤함을 느낀다. 휴대폰 달력에 빈 공간이 없다는 것은 내가 다시 욕심을 부리고 있다는 증거다. 한동안 느슨했던 시간들이 아득하다. 그냥 멍 때리거나 책을 읽고 집에서 머물며 건강을 위해 음식을 챙겼던 시간들이 멀어지고 있는 듯해 불안감이 엄습한다.


지금 이 순간도 머릿속은 복잡하다. 며칠 전부터 오일 경고등이 들어와 있는 차 상태를 체크해야 하고 칼슘약 처방도 받을 때가 되었다. 긴장 탓인지 뻣뻣해진 뒷목 상태를 생각하면 물리치료도 받아야 할 것 같다. 하지만 일단 아침을 먹고 글을 먼저 쓰기로 한다. 


다음에는 거절해야지 하면서 이내 승낙하고 조금 느슨해져야지 늘 마음먹으면서도 쉽지 않다. 딸의 말 대로라면 나는 아마 절대 나태 지옥에는 가지 않을 것이다. 항상 너무 바쁘게 살고 있으니 말이다. 헐렁해진 일정표를 들여다보니 마음이 여유롭다. 읽다만 소설도 읽고 대충 들었던 강의들도 천천히 정성껏 듣고. 냉장고에서 손길을 기다리고 있는 야채들도 흠씬 먹어주고. 돌아서면 어느새 잊어버리고 또 약속을 정하고 일정을 만들겠지만 하루쯤 느리게 그리고 천천히 쉬어가고 싶은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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