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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은숙 Oct 03. 2022

비 오는 날, 양푼 갈비찜

낯선 곳에서 만끽하는 행복한 순간

주말 아침, 큰맘 먹고 이뤄진 대학로 연극 관람. 2시간 남짓 공연 관람을 마치고 나오니 비가 쏟아지고 있다. 기상예보 강수확률 60%였는데 정확한 예측이었나 보다. 인원은 5명인데 우산은 두 개뿐. 서둘러 인근 편의점에서 우산 세 개를 구입하고 식당으로 향했다. 맛집 검색으로 찾은 곳은 '김치찜 전문점'. 핸드폰 네비를 보며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함께 걷는다. 제법 많은 비에 바짓단이 젖고 바람은 쌀쌀해도 발걸음은 가볍다. 


비가 많이 내리지만 대학로는 인파로 생기가 돈다. 얼핏 둘러봐도 모두 청춘들뿐이다. 한때 비는 낭만의 대명사였다. 옷이 젖고 꿉꿉한 냄새가 나도 거칠 것이 없었다. 비가 내리면 그저 설레었을 뿐이고 근사한 찻집, 아니 막걸리나 소주 한잔을 마시기에 딱 좋은 배경이었을 뿐이다. 비를 흠뻑 맞아도 그저 좋아 깔깔대기만 했던 날도 있었다. 언젠가부터 너무나 당연했던 감성들이 밋밋해진다. 비가 오면 외출이 귀찮아지고 모처럼 세차한 차에 얼룩이 남는 것이 짜증이 나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


골목과 골목을 지나, 사람과 사람을 스쳐 우리가 도착한 곳은 당초 목적지였던 김치찜이 아닌 '양푼 갈빗집'. 간신히 테이블 하나를 잡고 욱여넣듯 비로소 안착한다. 연인 또는 친구들로 보이는 젊은이들로 빼곡한 식당. 비좁은 공간에 자리를 많이 만들다 보니 밀집도가 높지만 불편하지는 않다.


드디어, 수많은 갈비를 품고 사연들을 들었을 찌그러진 양푼에 담긴 갈비찜 등장. 종업원이 당면과 새송이 버섯을 자르며 주의사항을 전한다. 4분쯤 후에 먹으면 되고 불의 세기를 줄이라는 내용이다. 보통맛인데 좀 맵다. 주문할 때 보통의 매운 정도를 물어보니 '신라면 맛'이라는 대답에 고민하다 선택했는데 무리수였나 싶지만 먹을만하다. 매운맛을 상쇄하기 위해 주먹밥과 계란찜, 좋은 안주에 빠질 수 없는 소주와 맥주가 추가된다.


옆 테이블에서 소주를 주거니 받거니 하던 청년들이 우르르 나가고 젊은 연인 한쌍이 들어와 자리를 잡는다. 젊음 그 자체만으로도 빛나는 모습에 절로 눈길이 머문다. 갈비찜 국물이 적당히 쫄아들 무렵, 창쪽으로 고개를 돌리니 창가에 매달린 전구 두 개가 주홍빛을 발하고 그 사이로 우산을 든 인파들이 지나가는 모습이 영화 의 한 장면처럼 잔잔하다. 모처럼 명징하게 귀에 머무는 빗소리와 비 오는 날의 풍경이 감성을 돋우기에 충분하다.


청춘들의 사랑은 달큼해지고 빗소리 사이로 가을이 내리는 밤. 후드득 빗소리 음악으로 여기며 주먹밥 예쁘장하게 빚어 나눠 먹고 매콤한 갈비찜에 맛있는 소주 한잔. 좋아하는 이들과 도란도란 정이 쌓여가는 대폿집의 밤. 오랜만에 낯선 곳에서 만끽하는 행복한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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