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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은숙 Oct 03. 2022

정체모를 꽃바구니

선물 같은 날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사무실 책상 위에 곱디 고운 보랏빛 꽃으로 장식된 꽃바구니가 나를 기다리고 있다. 누가 보냈을까 궁금해 얼른 카드를 살펴봤지만 이름이 없다. "애쓰지 않아도 잘되는 행복한 나날 되세요"라는 메시지와 '옷깃이 찐하게 스친 사람들'이라고 쓰여있을 뿐이다. 그때부터 행복한 추리가 시작되었다. 인사발령이 나면서 웬만큼 친분이 있는 이들한테는 이미 간식이나 화분이 도착한 뒤였기 때문에 더 어려운 수수께끼다. 아무리 떠올려도 짐작하기 어렵다. 


선물은 크기와 관계없이 늘 기쁨을 준다. 내가 좋아하는 품목일 경우는 더욱 그렇다. 오늘이 그런 날이다. 일명 '선물 같은 날'이다. 이른 아침 식당을 운영하는 친구가 공저로 책을 출간했다며 책 선물을 보내왔고 오후에는 생각지도 못한 꽃바구니가 도착한 것이다. 간신히 꽃을 보낸 이를 찾아낼 때쯤 늦었지만 축하한다는 문자와 함께 카톡 립스틱 선물 메시지가 도착해 한번 더 감동했다. 선물이라는 물건보다는 그들의 마음에 내가 남아 있음이 기쁘고, 내 삶의 변화에 관심을 갖고 응원해 주는 이들이 있음에 가슴 한편이 따듯해진다.


마음이 들떠 아들에게 자랑했더니 인기쟁이라며 한껏 치켜세워준다. 역시 아들은 엄마의 성향을 정확하게 알고 있다. 새로 바뀐 환경에 적응하느라 어깨가 단단해지고 새로운 업무를 익히느라 머릿속이 복잡한 즈음이다. 오랜 직장생활을 하면서 숱하게 자리를 옮기고 많은 사람들을 만나지만 여전히 새로운 곳에 적응하는 일은 쉽지 않다.


종일 행복한 고민 끝에 간신히 보낸 이를 추리한 후 넌지시 고맙다는 말을 건네자 아니라고 부인하던 동료 팀장이 부서원들과 기획한 취향저격 이벤트가 성공한 듯싶다며 뿌듯해한다. 사람 때문에 힘들기도 하지만 사람 덕분에 또 한 번 가슴이 뜨거워지는 날이다. 그들의 바람처럼 나의 하루하루가 너무 애쓰지 않고도 행복한 날들로 채워지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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