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마

부록

by 에퀴티

평일 오후에 햇빛을 벗 삼아 버드나무를 따라서 양재천을 걷노라면 태곳적 세월의 흐름을 느낀다. 주로 강가, 하천에 자란다는 버드나무는 잎이 아래로 늘어지고, 가지가 부드럽게 휘어져 있기에 살살 바람이라도 날리기라도 하면 살포시 흔들리면서, 오랫동안 내 옆에 있었다는 듯이 따뜻하게 맞이한다. 덩달아 주위의 모든 것들도 흘러가듯 움직인다. 시간이 느리게 가는 것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더할 나위 없는 나무이다. 잎이 많아서 그늘 밑에서 운치 있게 쉴 수 있는 것은 덤이다.


그러나 많은 나무들은 가지와 잎이 하늘로 솟구쳐 있다. 벚나무, 은행나무, 플라타너스나무, 포플러나무 등등. 이들 나무 사이로 걷노라면 주위가 산뜻해지고 발걸음이 한층 역동적이다. 마음은 경쾌해지고, 생동감이 솟아난다. 나무들이 아무리 나이를 많이 먹을지라도 젊음을 보여준다.


나이를 먹으면 머리는 훤해지고, 어깨는 처지며, 피부는 나이테처럼 주름이 늘어나고, 옹이처럼 검버섯이 생기거나 나무껍질처럼 점점 더 탁한 색깔로 변한다. 변화를 감지한 순간 유산소 운동과 스킨, 로션, 크림, 팩, 마스크 등 각종 화장품의 도움을 받는다. 그러나 한눈에 띄는 머리가 남았다. 사무실 칸막이 위로도 보이고, 만원 전철에서 유일하게 보이는 머리도 안타깝게도 나이를 먹고 있다. 심지어 멀리서도, 뒤통수에도 티가 난다. 젊어서는 머리가 쭈뼛쭈뼛 세워져서 골칫거리였는데, 이제는 아래로 쳐진다. 축 쳐진다. 게다가 머리카락도 빠진다. 둘째가 10분 동안 하는 드라이를 30초면 끝이다. 계산하면 1/20이다. 몇백 년 나이 먹은 나무도 봄이 되면 떨어진 잎들이 다시 돋아나는데, 삼사십 대부터 빠진 머리카락은 기약이 없다. 회춘을 위해 온갖 브랜드 샴푸를 사용해 봤지만, 굵어진 느낌일 뿐 도찐개찐 도토리 키재기다. 마지막으로 매일 약물 투입이 있는데, 주제넘게도 감기약도 챙기지 못한다.


순리대로 사는 것을 좋아하지만, 회사에서 만큼은 그러고 싶지 않다. 구성원들과 어울리면서 일을 하고 싶다. 유독 젊은 친구들이 많기에 그들과 어울려 생활하기 위해서는 정신뿐만 아니라 외모도 중요하다. 게다가 패션의 완성은 헤어가 아닌가? 결국 자연법칙의 순리를 응용해서 아래로 쳐져 있는 헤어를 하늘로 옆으로 역동적으로 말아 올리면 자연스럽게 해결될 수 있다. 해답은 명확하다. 파마다.

파마를 하면 모발이 손상되어 머리카락이 빠진다고 하는데, 이미 빠질 만큼 빠졌고, 파머 전후로 보면 빠지는 게 차이도 없다. 게다가 원장 선생님이 다음 예약을 잡아주면서 '파마하고 나서 머리숱이 늘어났어요.'라고 센스 있게 거들면, 머리 스트레스가 사라지면서 파마 후에 수북해짐을 느낀다. 이제 헤어는 하늘로 거슬러 올라가 멀리서도 젊음을 보여준다.




사람은 태어나서 떼구루루 굴러다니다가 땅을 딛고 일어서서는 하늘을 향해 솟아오른다. 그러다가 정점을 찍으면 노화가 시작되고 땅을 향한다. 진시황처럼 자연법칙을 거스를 만한 권력도 없고, 브라이언 존슨처럼 노화를 늦추기 위해 매년 막대한 비용을 처리할 재력도 없다. 게다가 그들은 결국 땅으로 갔거나 갈 것이다.

동네 미용실에서 서너 달에 한번 시각적 착시 효과면 젊음을 유지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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