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투

부록

by 에퀴티

1.

집안 사정상 외할머니댁에 얹혀산 적이 있다. 그 당시 외할머니댁은 동네 할머니들의 사랑방 같은 곳이었고, 매일 화투판이 벌어졌다. 주로 민화투를 쳤다. 자연스럽게 할머니 등뒤에서 보다가 점점 앞으로 나오고, 아는 체를 하다가 훈수도 둔다. 간혹 패가 안 풀리는 할머니의 역성으로 쫓겨났지만, 어느덧 독립할 준비는 되었다.


우리는 누나, 형, 나를 포함해 삼 남매다. 어렸을 적 방학은 늦잠을 잘 수 있고, 방학 숙제를 마지막날 몰아서 할 수 있어서 자유 시간이 허락되어 언제나 기다려졌다. 그러나 막상 방학이 되면 할만한 게 없어서 기다려온 보람은 크지 않다. 그나마 여름방학에는 개울에서 물장구를 칠 수 있는 외삼촌네로 귀향 보내기도 하는데, 겨울에는 일을 하셔서 갈 수 없다. 동네 아이들이 모이기 전까지는 꼼짝없이 삼 남매가 뒹굴뒹굴하면서 시간을 때워야 하는데, 겨울에는 따뜻한 방에서 화투만 한 게 없다. 다행히 엄마는 쥬단학 화장품 외판원을 하고 있어서 아침을 차려 주고는 출근을 하셨다.

우리는 문소리가 나자마자 이불 위 그대로 화투를 꺼내서는 시작한다. 돈 대신에 꿀밤이지만 누나, 형을 때릴 수 있어서 더할 나위 없이 신난다. 물론 맞을 때는 아프고 화가 난다. 특히 형은 인정사정이 없다. 할머니들보다 흥미진진하다. 광이 나오기만을 두근두근 하면서 기다린다. 화투 한 장을 내고 뒤집을 때 광이 나오면 눈이 번쩍한다. 내가 먹으면 신나지만, 못 먹으면 열불이 난다. 그렇게 한동안 겨울방학이면 화투에 빠져들었다. 간혹 엄마가 현관문을 나서고 얼마 지나지 않아 지갑을 놓고 가거나 연탄불을 갈기 위해 다시 돌아올 때는 난리다. 이불로 화투를 덮고 이불속에서 숨죽이며, 귀를 쫑긋한다. 이불 사이 숨구멍으로 빗자루 끝이 희미하게 보인다.


2.

오전만 일하는 가성비 좋은 아르바이트를 물색하다가 홍익회를 찾았다. 출근 시간에 전철 안에서 신문을 판매하는 것이고, 소속은 회기 홍익회다. 집과 학교에서 가까운 회기역 ~ 의정부 북부역(현 가능역)까지 담당한다. 요식행위의 면접을 끝내니, 바로 내일부터 출근하라고 한다. 나까지 포함해서 총 인원 5명인데, 신문 판매는 당일 선착순 4명만 가능하다. 결근하는 인원이 항시 있으니, 선착순 걱정을 하지 말라고 한다. 의정부 북부역 또는 의정부역에서 출발하는 수원행/인천행 열차에서만 판매하고, 반대방향 열차에서는 팔리지 않으니 휴식을 취하라고 한다.


신문이 출고되는 새벽 5시쯤에 회기역에서 파란색 유니폼으로 갈아입고 각자 신문을 3~4백 부 받는다. 그리고 의정부 북부행 열차에 올라타서는 간지를 끼운다. 고참들은 출근 열차를 한대도 놓치지 않기 위해 일찌감치 간지 작업을 끝내고, 한 열차에서 팔 수 있는 부수만큼만 챙기고서는 출근 열차가 다가올 때마다 순서대로 갈아탄다. 거점인 망월사역에 내려서 속지 작업을 마무리하고, 고참 신문들을 구분해서 차곡차곡 정리한다. 이제 들고 다닐 수 있는 부수를 세고 한 품에 안는다. 의정부 북부 또는 의정부에서 출발한 열차의 맨 첫 칸으로 갈아타자마자, 출근하는 사람들 대상으로 '조선, 중아, 한겨레, 스포츠신문 있어요'를 악센트를 주면서 외친다. 사람들로 가득 차서 이동이 어려워지기 전에 첫 번째와 열 번째 칸을 발 빠르게 왕복하면서 신문을 소진시킨다. 신문 값을 받는 상의 왼쪽 주머니는 무거워지고, 거스름돈을 주는 오른쪽 주머니는 가벼워진다. 바지 주머니에 지폐도 제법 생겼다. 열차를 놓치지 않기 위해 유니폼의 기운을 받아 갈아탈 역에서 무단으로 철로 횡단을 하는 위험천만한 행동을 하기도 한다. 그리고 반대 방향 열차로 갈아타서는 마지막 칸 종단벽에 신문을 깔고 등을 대고 앉아서 신문을 세고, 지폐, 동전을 계산한다. 동전을 세면 피곤함은 날아가 버리는 두둑한 휴식이다. 망월사역에 도착해서는 다시 신문을 한 아름 안아서 다음 열차를 준비한다.

신문을 가슴 앞에 진열하는데, 스포츠신문은 인기상품이고 컬러이기에, 사람들 시야에 잘 띄는 곳에 위치시키고, 정론지는 비인기고 흑백이기에, 겹쳐서 일부만 보여준다. 판매가 저조할 때는 시선을 끌만한 지면을 위치시키고 헤드라인을 짧게 뽑아서 외친다.

10시가 지나면 신문을 사는 사람이 급격히 줄어들어서, 돈이 필요하면 더 팔고, 충분하면 정리한다. 조선일보, 한겨레 등 조간 3개, 스포츠서울, 일간스포츠 등 2개를 한부당 300원에 판매하면 100원은 내가 먹고, 200원은 홍익회에 준다. 남은 신문은 돌려준다. 받은 부수와 판매 부수를 정확하게 계산한다. 판매한 만큼 수익이 늘어나고, 일찍 완판 하면 빨리 퇴근할 수 있다.

'92년 8/9일 황영조가 바르셀로나 올림픽 마라톤에서 금메달 수상한 다음날은 그야말로 대박이었다. 새벽에 스포츠 신문 헤드라인을 보고 깜짝 놀랐고, 일찌감치 완판을 예상하여 최대한 스포츠신문을 받아냈다. 신문이 날개 돋듯이 팔릴 때마다 금메달의 감격을 느낀다. 정론지 포함한 신문 완판은 아침 9시를 넘지 않았다.


추석연휴에 신문은 첫날만 발행하고 멈추기에, 갑작스러운 소나기를 환영하는 우산장수처럼 연휴 첫날은 기다리고 기다리던 대목 중에 대목이다. 씀씀이가 넉넉한 귀향길 승객 대상이며, 부록으로 추석연휴 동안 모든 지상파 TV 편성표가 있다. 이날은 예외적으로 전원 참석하고, 몇일치 해당하는 신문 부수를 받을 수 있다. 점심 끼니를 거르면서 신문을 들고 다니면 저녁시간대에는 목돈을 만질 수 있다. 기분이 째지는 날이다.

회기역에는 판매원을 위한 휴식공간이 있다. 출퇴근하는 사람도 있지만, 저녁에 석간신문까지 팔기 위해 숙식을 하는 고참들도 있기에, 휴식공간은 그들을 위한 골방이 되어 버렸다. 방 가운데에는 각양각색의 이불들이 24시간 널브러져 있고, 한쪽에는 담배꽁초가 수북이 쌓인 재떨이와 소주병들이 매캐한 냄새를 풍기고 있다.


그날도 추석연휴 대목을 마치고, 모두 정산을 했다. 그러자 골방 터줏대감이자 간지 끼우는 법을 가르쳐준 사수가 제안을 한다.

"오늘 목돈도 만졌으니 저녁 먹으면서 포커 한판 합시다."

오랜 시간 함께 일했던 그들이기에 맞장구를 치면서 의기투합한다. 민화투만 알고 있기에 가만히 있는 나한테 사수가 배우면서 하면 된다고 재차 채근 댄다. 추석이라 함께 놀 친구도 없기에 합류한다.

짜장면 먹으면서 분위기만 맞춰주고 집으로 가서 자랑할 생각이다. 처음에는 지켜만 보다가, 대략 게임 이해를 한 다음부터 게임에 동참한다. 처음부터 몇 판을 이기니 지폐가 늘어나면서, 열기가 한껏 오르고, 역시 오늘은 최고의 날이라고 스스로를 고조시킨다. 시간이 지나간다. 6시, 7시, 8시, 9시, 10시, 11시 그리고 자정을 넘긴다. 어느덧 목돈은 잔돈만 남았고, 열기는 온데간데없고 식어서 싸늘해졌다. '이게 뭐지, 내가 뭐 한 거지'라는 자조만 커져 갔다. 판을 쓸어간 사람이 돈을 빌려 주겠다고 했지만 빌리지는 않았다. 화투판에서 제일 잘한 일이다. 그러자 누군가 그만하자고 제안을 하고, 정리한다. 오늘 승자한테 개평을 받고 각자의 보금자리로 간다.


오락 게임의 도파민과 비교도 안 되는 도파민 폭발을 처음 경험했다. 내성적이고 소극적인 내가 흥분이 되고, 승리에 도취되고, 한 번 더 하면 잘 될 것 같은 자신감으로 지배되었다.

하루를 고스란히 갈아 넣어 만든 값비싼 노동의 대가는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남은 것은 깊게 가라앉은 자조뿐이다. 축하받을 일과 비난받을 일을 했으니 비긴 것인가?

도파민의 짜릿함과 손 끝에서 느껴지는 쪼는 맛이 몇 시간 동안 온몸을 관통하였기에, 앞으로 어떻게 될지 걱정이다. 그래도 도파민이 사라지는 막판 몇 분 동안에는 허망하고 후회하고 자책을 하였다.


3.

예전 장례식장은 저녁이 깊어지면 자리가 하나둘 비고, 그 틈에서 슬그머니 화투판이 벌어지곤 했다. 그러면 밤늦게까지 고인과 함께 하겠다는 명목하에 유족들의 극진한 대접을 받는다. 술로 자리를 지키겠다는 사람들은 정오를 넘기면 눕거나 사라지기 마련이지만, 그들은 한밤중을 지나 새벽, 아니 아침까지 눈에 핏대가 서도록 자리를 지킨다. 화투의 힘이다.


회사에 열심이고 평판이 좋은 선배들은 대부분 경조사에 참석하기에 초년생부터 경조사는 빠짐없이 참석한다. 유족에 대한 위로는 잠깐이고 선배들과 육개장에 소주를 곁들이면서 얘기를 나누고 관계를 돈독히 한다. 그리고, 시간이 얼추 되면 소위 잘 나가는 선배들의 판이 벌어진다. 초기에는 구경만 했다. 장례식장에서 화투라는 부정적 인식도 있지만 내가 낄 자리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러다가 선배들의 권유, 인원이 모자라는 경우가 생기면서 선배들과 함께한다. 처음에는 전철 막차 시간은 지키면서 참여한다. 잃은 날도 있고 딴 날도 있다. 도파민이 온몸 가득 분출한다. 선배가 차로 데려주겠다고 하거나 택시비를 벌게 되면 자정을 넘긴다. 그리고 화투가 끝나면 버리기 아까워서 습관적으로 주머니에 넣는다. 방 책상 서랍에 화투가 쌓이기 시작한다. 이제 장례식 있는 날이면 디폴트 멤버다.


그러다가 매서운 겨울 즈음 불금이고 월급날에 장례식장으로 가는 날이 있었다. 고인의 명복을 빌고, 유족을 위로하고 저녁을 먹는다. 취기가 올라올 즈음에 한 켠에 넓은 자리가 만들어졌다. 월급날 두둑한 현금과 다음날 출근 걱정도 없으니 패를 만지기 전부터 도파민이 분출된다. 멤버들 모두 함께 '굿럭'이라고 외치면서 판을 시작한다. 자정이 지나가도 이기고 지고를 반복하면서 현금은 조금씩 줄어들기 시작한다. 연신 담배를 피워가면서 침이 마르면 맥주로 목을 축인다. 묵직하고 저린 엉덩이, 꾸부정한 허리, 삐딱한 어깨, 충혈된 눈, 바싹 말라가는 머리의 통증을 도파민이 잊게 한다. 시간을 보니 새벽이 밝아올 시간이다. '인생 뭐 있어 인생이 도박이지' 하면서 막판 세 판으로 정리하자고 한다. 이성적으로 뻔한 결과지만, 승리감에 빠져서 올 인 한다. 희비가 엇갈린다. 도파민이 확 빠져나간 자리에 공허함이 훅 몰려온다. 선배가 동전 몇 개만 남아 있던 주머니 속으로 개평이라며 택시비를 찔러 준다. 매서운 새벽 공기, 덜렁덜렁 빈 지갑, 서슬 퍼런 도덕적 반성에도 아무런 감각이 없다. 택시를 잡고 집으로 향한다.

해가 중천에 뜰 때쯤 깨어나니. 엄마가 기다렸다는 듯이 다가온다. 책상 위에 한가득 쌓여 있는 화투를 가리키면서 조심스럽게 말을 꺼내다가 급기야 흐느낀다.

"아들, 청소하면서 찾았는데, 이게 뭐니?"

"오늘도 화투 하다가 새벽에 들어온 건 아니지?"

"술 먹는 건 괜찮은데, 도박은 안된다. 패가망신되는 거야"

"아들아, 정신 차려라"

엄마의 우는 얼굴을 멍하니 쳐다보다가 수습을 한다.

'회사 장례식장에 갈 때마다, 아까워서 가져온 것이고, 앞으로는 가져오지 않을 것이다'라고 엄마를 다독이면서 다짐을 한다. 일어나서 구겨진 바지 주머니에 손을 넣었는데, 무언가 만지작 거려지는 순간, 발로 짓눌려 찌그러진 깡통이 되어 버렸고, 여기저기서 발로 차버리고 있다. 그게 뭐라고 거덜 났음에도 본능적으로 주머니에 넣었다. 무섭다. 엄마 앞에서 손을 꺼낼 수가 없어서 주머니에서 화투 케이스가 부서지라 움켜쥔다.


공허함이 도파민을 억제시킨 건지, 본능이 무서워서인지 이후로 도파민이 분출된 적은 없다. 장례식장에서는 착실하게 술만 먹는 선배들과 끝까지 어울리다가 집으로 향한다. 잘 나가는 선배들과도 소원해지지 않고 잘 지낸다. 화투 대신에 회의에서 휴게소에서 회식자리에서 돈독한 관계를 만들어간다.




부적절한 인식에 대한 시대적 흐름 때문에 장례식장에서 화투를 치는 사람들이 하나둘씩 사라지더니, 이제는 찾을 수가 없고, 장례시스템도 완전히 바뀌었다. 조문객들 유치를 위해 회전율도 빨라졌고, 방바닥에서 테이블로 시설도 현대화되었다.

그리고 이제 유족과 함께 새벽까지 장례식장에 머물지도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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