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록
1.
시댁 가족들은 서울 하늘아래 살면서도 왕래가 잦지 않다. 각자 독립적인 생활을 존중하고 터치하지 않는다. 차로 30분이면 갈 수 있는 거리인데 교통 체증 핑계로 미적 거린다. 첫째가 어머님 댁에 걸어서 갈 만한 거리에 살고 있어서 자연스레 나머지 자식들의 어머님 걱정도 줄어든다.
초기에는 시댁에도 행사가 제법 있었다. 연초 인사, 시부모님 생신, 명절, 오이지 담그기, 여름휴가, 김장하기, 크리스마스 그리고 자식들 지위가 한 단계 올라가거나 또는 손주들 대학 입학 및 취업 등 제법 행사가 있었으나, 자식들과 시어머님 간의 오랜 조율 과정 등을 통해 이제는 생신과 명절만이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어머님은 경제활동을 하셨던 만큼 누군가 가사노동을 독식하는 것을 싫어하셔서 모두 모여서 음식을 만들고 각자 가져가는 것을 강조하셨다. 그러나 자식들이 한날한시에 모이는 것이 어려워지더니 각자가 음식을 준비하는 것으로 바뀌었다. 어머님은 본인이 할 수 있는 기본 요리와 반찬들을 준비하고, 자식들은 1~2가지 요리를 만들거나 구매한다. 그러나 자식들의 간소화 요구는 지속되고, 이제는 무조건 외식이다. 그나마 명절은 우리 가족을 제외하면 모두 기독교라 명절 음식과 제사 없이 모두 모이는 것에 의의를 두고 있기에 외식을 하더라도 어머님이 할 수 있는 양만큼의 음식을 하시고 자식들한테 나누어 준다.
시어머님은 자식들한테 부담주기 싫어서 자식들 집에 가는 것을 꺼려하고, 자식들이 집에 오더라도 식사는 밖에서 한다. 시아버님이 돌아가신 후에 단독 주택에서 작은 평수의 빌라로 이사하면서 시어머님 집에서 가족들이 모여서 무엇을 하는 것은 사라졌다. 어머님이 왜 이사에 대해 그 당시 꺼림칙했는지 이제야 실감이 난다.
자식들이 제안한 여행 일정이 친구들 일정과 겹친다면, 당연하다는 듯이 편안한 친구들과 여행을 떠나신다. 어머님과 자식네 간에 각자 삶을 존중하고, 상호 부담스러운 접촉면을 최소화한다. 그리워하고 걱정이 앞서는 마음은 무소식이 희소식이라는 신념하에 전화로 대신한다. 가족 근황 사진이나 동영상을 카톡으로 보내 드리면 더할 나위 없다. 자식이나 손주들이 보고 싶으면 침침한 눈으로 스마트폰 갤러리를 쭈욱 훑으면서 추억을 소환한다.
자식들 간에는 용건이 아니면 어머님을 통해서 안부를 전해 듣는다. 희소식이나 나쁜 얘기를 전해 들으면 전화 통화로 축하나 위로를 대신한다. 급전적인 문제 또는 가정불화 없이 무탈하다면 가족 행사가 유일한 대면이다.
시어머님은 무엇을 하든지 자식들 입장에서 생각하고 자식들이 원하는 대로 집안 대소사를 간소화한다. 그리고 본인이 경험한 '시'자에 대한 부정적인 것을 없애주기 위해 며느리들 입장에서 생각하고 소통한다. 각자의 독립적인 생활을 존중하고 터치하지 않는다. 무소식이 희소식이기에, 보고 싶은 자식들, 손주들 얼굴과 손을 잡아 보기가 어렵다.
2.
얼마 후면 미수(米壽)인 장모님은 자식들이 오면 밭에 있는 푸성귀를 뽑아 주거나 또는 김치를 담가 준다. 그래서 배추, 무를 심을 때는 처음부터 촘촘하게 심고, 자식들이 올 때마다 솎아내기를 하면 추수할 때 적당한 크기의 배추, 무가 되어 있다. 게다가 노인 보행기를 끌고 한참을 가야 하는 밭을 자식 차로 가면 금세다.
아직 여린 배추나 무는 식감이 좋아 쌈이나 김치 해 먹기 좋다. 저녁은 열무 쌈에 삼겹살을 얹어서 먹을 것이고, 귀경길에는 야리야리한 열무김치를 한통 가져갈 수 있다. 입맛을 돋우는 먹거리들이다.
삼강오륜 가르침을 위해 힘쓰는 일이라면 어떻게든 자식들을 부려 먹으려는 도시네 중년 부모와는 다르게 어머님한테는 자식들이 몇 명 따라가는 건 중요하지 않다. 운전자만 있으면 되고 나머지는 거들 뿐이기에 따라오든 말든 신경 쓰지 않는다. 자식들이 쳐다보는 동안 허리 굽혀서 한 고랑을 후딱 솎아낸다. 자식들도 여린 열무를 나르고 보자기에 쌓고, 고랑 하나씩 맡고는 조심스럽게 솎아낸다. 보자기 하나에 여린 열무가 수북하게 쌓이자 자식들은 얘기한다.
"엄마, 열무 충분하니 그만하고 이제 가요."
어머님은 귓등에도 듣지 않고 아주 과감하고 빠르게 솎아낸다. 큰 보자기 3개에 어린 열무가 산처럼 쌓이고, 밭에는 추수까지 실하게 자랄 열무만 남아 있다. 허리를 펴면서 기다리고 기다리던 한마디를 한다.
"짐 싸라."
어머님은 밭에서 집으로 이동하여 열무를 다듬기 위해 마당 한편에 있는 장독대 옆 개수대에 자리를 잡았다. 어머님이 손을 뻗으면 닿을 만한 자리에 부채꼴 모양으로 열무를 풀어놓는다. 거들려는 자식들 손길을 귀찮은 듯 홀로 손질을 시작한다. 저녁 준비도 전에 손질이 끝났다. 작은 부채꼴로 사이즈별로 차곡차곡 쌓아두셨다. 제일 여리여리한 것은 오늘 저녁 쌈으로, 적당한 크기의 상태가 좋은 것은 자식들이 내일 가져갈 것이다. 그리고 나머지 자투리는 장모님이 드실 것이다.
처갓집 창고에는 1년 내내 쌀가마니가 있다. 힘에 부치지만 자식들 먹을 만큼 쌀농사를 하겠다고 고집을 앞세우고는 자식들이 구례에 오면 항상 물어본다.
"쌀 남아 있냐?"
애초에 집에 쌀이 있든 없든, 네, 아니요의 대답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다.
"엄마, 쌀 가져갈게요."
라는 대답과 함께 쌀가마니를 가져가야 한다. 두 가마니를 가져가면 흐뭇해한다.
논을 팔지 않는 한 논농사는 계속될 것이다. 모내기, 추수, 제초 등은 품삯을 주고 이웃한테 맡기고, 때때로 제대로 잘 자라고 있는 지보고, 필요한 게 있으면 이웃한테 얘기해서 처리한다. 그래서 자식들이 오면 밭뿐만 아니라 논도 간다. 여름에는 지리산에서 흘러 내려오는 물이 논으로 잘 들어오게 물길을 살피고, 추수할 때가 되면 논에 고여 있는 물을 빼주는 일이 중요하다. 올여름에 비닐 수로에 문제가 생겨서 교체하는데, 물살이 세서 애를 먹었던 기억이 난다.
장모님은 전통을 고수하면서 본인이 살아왔던 그대로 살아오고 계시다. 본인의 경험이 중요하고, 본인이 아는 대로만 일을 한다. 장모님이 지시한 일을 할 때는 본인이 하는 것과 동일하게 해야 한다. 거기에 플러스알파를 하면 더할 나위 없다. 고령의 나이임에도 맛난 음식이 도처에 널린 도시에 사는 자식들 먹거리를 위해 노동을 한다.
양가 어머님은 모두 자식들과 떨어져 살고 있지만, 누구보다 자식들의 행복을 바라고 계신다. 그중 한 분은 자식이 뭐라 하던 신경 쓰지 않고, 자기 방식대로 일하면서 생활하신다. 다른 한 분은 자식의 걱정을 귀 기울여 듣고, 서로 부담되지 않는 선에서 일을 줄이거나 조절한다.
앞으로 우리 세대가 부모가 되고 윗세대가 사라지면, 대부분은 이런 ‘부담을 줄이고 서로 조율하는 방식’을 따르게 될 것이다. 그리고 지금보다 더 간소하게 살림과 일을 꾸려갈 가능성이 크다.
한편에선 자식을 위한 노동이 줄어들수록 자식에 대한 사랑도 줄어들지 않을까 걱정이다. 어쩌면 자식네가 우리 집에 오는 것이 부담스러워질 날이 올 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