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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기환 Aug 04. 2021

가위

2015년 초 어느 날

첫 가위 © 윤기환, 2021




Phase 1

  어둠 짙은 적막한 숲, 나는 찬 공기를 마시며 걷는다. 빼곡하게 채워져 있는, 거대하지만 나뭇잎 하나 없이 날카로운 나무들과 밤하늘 외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길을 잃어 겁에 질렸을 때쯤, 사람들이 바스락거리며 다가오는 소리가 들린다. 마침 춥기도 하고 지쳐 있었기 때문에 가능하면 하룻밤만 부탁을 하고자 인사하려던 찰나... 사람이 아닌 날카롭게 생긴 검은 존재들이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순식간에 나를 에워싸며, 동시에 내 몸뚱이를 싸악 싸악 벤다. 그렇게 나는 고꾸라지며 피를 흘리며 절단된 내 팔, 다리, 온갖 장기들을 바라보며 숨을 거둔다.


Phase 2

  공포에 질린 채 눈을 뜬다. 꿈이었다. 그 검은 형체들이 나를 벨 때의 통증이 너무나도 생생하여 꿈일 줄은 생각도 못 했다. 너무 다행이다. 그런데 뭔가 이상하다. 이곳은 내 방이 아니다. 처음 보는 공간이다. 온 사방엔 아무것도 없는 냉기가 느껴지는 푸른 방이다. 나는 침대가 아닌 테이블 위에 누워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무슨 영문인지 모른 채 테이블에서 내려온다. 아래에 뭔가 보인다. 유리 관이 있는데 안에 죽은 듯이 누워있는 사람은 내 동생이다. 창백하게 굳은 채로, 입술은 어두운 보랏빛을 띤 채 온몸은 새하얀 천으로 덮인 채 얼굴만 드러나 있다. 동생의 생사여부를 알기 위해 나는 그를 향해 한 손을 뻗는다. 순간 그는 눈을 번쩍 뜨며 입꼬리가 귓가에까지 찢어질 정도로 씨이 이익 기분 나쁜 미소를 띤다. 주름 하나 없던 그의 얼굴에는 온갖 주름이 생기기 시작하더니 더 이상 사람의 얼굴도... 그렇다고 뱀의 얼굴도 아닌 것이... 어쨌든 이 괴물 같은 놈은 내 동생이 아니다. 난 속았다. 이 차가운 방에서 어떻게든 빠져나가야만 한다.


Phase 3

  푸른 방은 갑자기 어두워지기 시작하며 동생인 척했던 괴물은 몸이 거대한 뱀처럼 기괴하게 변형되기 시작하는데 그 몸이 핏줄로 울긋불긋하게 불끈 솟아 쳐다보기 힘들 정도로 공포스럽다. 그것보다 문제는... 몸이 움직이질 않는다. 팔, 다리로부터 시작하여 내 몸이 서서히 굳기 시작하더니 입까지 마비되어 비명조차 지를 수가 없다. 살려달라 소리 지르려 했지만, 결국 내가 낼 수 있는 소리는 '읍 읍 읍'이다. 마지막으로 나는 머릿속으로 동생의 이름을 울부짖으며 괴물의 입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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