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초월하는 여정
살다 보면 중간에 이런저런 기대를 할 때가 많다. 로또 1등 당첨, 대기업으로의 취직 등 큰 바람을 품고 사는 사람도 있지만, 보통은 일상에서 누구나 가질 법한 자잘 자잘한 기대감이다. 점심시간에 국밥 대신 조금이나마 더 맛있는 메뉴를 먹길 바라는 기대, 오늘만은 귀찮은 업무 지시를 받지 않기 바라는 마음, 교수가 평소보다 과제를 부디 적게 내주기를 기대하는 마음, 본인이 올린 SNS 게시글에 하트가 많이 눌렸으면 하는 등의 하찮은 바람들. 인간 심리가 참 흥미로운 것이 입시나 취직 등 향후 삶의 질이 걸려 있는 큰 문제가 잘 안 풀릴 때보다도, 점심 식사 메뉴가 늦게 나오거나 맛이 없을 때, 수업이 10분 더 늦게 끝났을 때, 혹은 본인 SNS 게시글에 사람들이 별로 관심을 가져주지 않는 등의 사사로운 기대감들이 좌절되었을 때 더욱 화를 참지 못하게 되는 경우가 꽤 있다.
인간은 영육이 굉장히 나약한 동물이다. 밑도 끝도 없이 나약한데 머리와 상상력은 (다른 지구상 생명체들에 비해 비교적) 쓸데없이 좋다. 그러다 보니 주제 파악도 못하고 필요 이상으로 바라는 게 많아 욕심을 부리다 화를 입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가령 주식투자의 경우, 하루 운 좋게 10만 원을 벌었다고 해서 다음 기회에 100만 원을 거두어들일 수 있다는 보장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충분한 액수에 만족을 못하고 더 큰 액수에 눈이 멀어 리스크는 염두에 두지조차 않은 채 도박성 투자를 시도하다 되려 빚쟁이가 되는 비극을 맞이하기도 한다. 그 이후엔 돈 문제가 아니더라도 술값이 올라서, 국밥이 맛이 없어서, 잠자리가 불편해서 등등 삶의 모든 것들이 불만족스러워 사사건건 성을 내는 소인배가 되는 것이다. 기대감 또한 욕망의 한 부류라고 볼 수 있다.
평소에도 심리적 자유함을 얻어 스스로를 초월하고자 한다면, 불필요한 사사로운 기대감을 버리는 연습을 해야 한다. 단, '난 틀렸어, 오늘도 망했지만 내일은 더 최악일 거야'식의 부정적인 마음을 품으라는 것이 아니다. 말 그대로 보장되지도 않은 좋은 일을 굳이 기대하고 바라지 말라는 것이다. 좋은 일에 대한 기대감 대신, 그 자리를 그저 물 흐르는 듯 한 여유로 채우는 것이 여러모로 건강에 더욱 이롭다.
이는 대인관계에서도 마찬가지다. 일상적인 예시로, 본인에게 친구 A가 있다고 쳐보자. A가 좋아서 먼저 인사하며 다가가 보기도 하고, 그의 생일이 다가오면 기프티콘을 보내 호의를 표시하면 '나도 생일에 똑같이 해주겠지?'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러나, 정작 본인 생일에는 기프티콘은커녕 아무런 연락조차 오지 않아 회의감에 빠지게 된다. 제삼자에게는 별 일 아니어 보일 수 있지만, 당사자에겐 꽤나 가슴 아린 일화다. 그렇다고 해서 상대방에게 애정을 강요할 수는 없지 않은가. 그렇다면 결국 답은 정해져 있다. 호의를 베푸는 것과는 별개로 상대에게 별 기대를 걸지 마라.
본인 주변에 대한 기대감을 접어야 하는 궁극적 이유는 세상을 증오하기 위함이 아니다. 자신을 우선적으로 지키기 위해서다. 세상을 살다 보면 어느 정도의 이타심은 있어야 조금이나마 풍요롭고 건강하게 살 수 있긴 하다만, 무엇보다도 그 이전에 내가 먼저 건강해야 타인을 순수한 마음으로 품고 챙겨줄 수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스스로 설 줄 알아야 자신을 초월하는 여정에서 한 단계 나아가며 대인배에 한 발짝 가까워질 수 있다.
'모든 지킬 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 - 잠언 4: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