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대에 중국 어학연수 가는 진짜 이유는 말이죠,

by 까막눈이
'악의 평범성'을 말했던 한나 아렌트 영화 <Hannah Arendt> 포스터


예전에 한나 아렌트를 공부하면서 그녀에 관한 영화를 봤습니다. 저는 영화 속에서 그녀의 논리적인 사고력과 깊은 사유뿐 아니라, 그녀를 둘러싼 환경이 인상적으로 다가왔습니다. 한나 아렌트는 출산을 하지 않아 돌볼 아이가 없었고 연구를 적극적으로 지지해 주는 남편이 있었고 자기 방은 물론 본인 연구실도 있으며 연구실에는 비서가 있어 온갖 잡무를 봐주고 있었습니다. 당시 육아와 살림으로 경력은 단절되었고 늘 피곤에 찌들어 책 한 권 제대로 볼 시간도 없어 사회에 뒤처지는듯한 패배감에 젖여 있었던 저는 그저 공부만 할 수 있는 한나 아렌트가 많이 부러웠습니다.


만약 네가 그런 상황에서 한나 아렌트같이 뛰어난 철학적 성과를 낼 수 있느냐 묻는다면 놀기 좋아하는 저로선 자신 없지만 잡다한 일에 신경 쓰지 않고 충분히 사색하며 공부하는 그녀의 환경이 무척 갖고 싶었나 봅니다. 버지니아 울프가 일찌감치 여성에게도 자기만의 방이 필요하다고 외쳤음에도 아직도 제 방과 책상 하나 없이 노트북 들고 떠돌아다니는 제 신세를 보면 한나 아렌트처럼 사는 일은 요원해 보였습니다.


두 아이를 키우고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나름 성실하게 살아가던 차, 기회는 50살이 넘어서야 찾아왔습니다. 중국어 공부가 너무나 재미있어 HSK 시험 보고 관광통역사 자격증도 따고 이따금 중국에 여행을 가긴 했지만 현지에서 중국어를 공부해보고 싶은 꿈이 몽실몽실 피어올라 가슴을 곽 채웠던 시기입니다.


첫째 아이는 대학에 다니고 둘째 아이는 작년 말에 대학에 합격해 아이들은 이제 제 손갈 일이 적어졌고 남편은 몇 년 전부터 주말 집안일을 분담하면서 점차 가사가 능숙해졌으며 양가 부모님은 아직 건강하시고 내 체력이 받쳐주는 지금! 저는 꿈을 실행에 옮기기로 했습니다. 바로 중국 어학연수 가기!


언젠가 중국 어학연수를 가기 위해 저는 몇 년간 비용을 모아두었습니다. 중국 어학연수를 대학부설 어학당으로 간다면 다른 나라에 비해 비용이 저렴한 편이라 비교적 부담이 적었고 중국 대학은 유학생은 물론 어학연수생도 기숙사에 머물 수 있기에 생활비도 절약할 수 있는 점도 매력적으로 다가왔습니다.


물론 출발이 순조롭지는 않았습니다. 남편은 결혼 기간 숱한 해외 출장으로 자주 집을 비웠지만 제가 이렇게 오래 떠나 있음은 처음이라 당황스러워했고 아이들은 저 없이 어떻게 생활할지 막막해했습니다. 하지만 평소에도 중국어 공부에 진심이었던 저를 잘 아는지라 제 인생에서 꼭 필요한 시간이라고 가족을 설득하자 서서히 수긍해 주었고 결국 적극적으로 지지해 주었습니다. 중국으로 출발하기 2주 전인 요즘, 가족이 저 없는동안 잘 지낼 수 있도록 집안 구석구석을 정리하고 필요한 생활 용품들을 집에 쟁여두며 바쁘게 지내고 있습니다.


올해는 제가 정말 좋아하는 중국어 공부를 하며 내 취향은 무엇인지, 내가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도 살펴보며 나 자신을 관찰하는 시기를 인생 최초로 가져보려고 합니다. 낯선 나라에서 혼자 생활하다 보면 좀 더 나를 알아가겠죠? 이 소중한 시간이 앞으로 내 삶에 귀한 자양분이 되기를 바라지만 실은 이런 거창한 바람보다는 나이 많은 학생으로서 친구를 사귈 수 있을지, 밥 같이 먹을 사람은 있을지 걱정이 앞서기도 합니다.


2026년, 나만을 돌보는 시간을 보낸다한들 감히 한나 아렌트같은 위대한 철학자의 통찰을 얻기는 어렵겠지만 적어도 나라는 인간에 대해서 알아가는 귀한 시간으로 자리매김하기를 바라봅니다. 더불어 중국어 회화의 향상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