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8월 13일(일)]
7월 21일 뉴델리에 도착한 뒤 처음으로 성당에 갔다. 렌탈회사 운전사가 오늘은 마루티 스즈키의 중소형 세단 디자이어를 몰고 왔다.
회사 대표가 지난 6일 "2~3일 후에 디자이어가 나온다"고 했는데, 이제야 다자이어가 나온 것이다. 며칠 늦어지는 것은 인도에서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도 않는 상황이다. 한국이라면 어림 없는 일이다.
성당으로 가는 길에 변화가 생겼다. 야무나 강 주변에 있던 이재민 수백명이 감쪽같이 사라진 것이었다. 인도 정부가 다음달로 예정된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를 앞두고 취한 조치로 보였다. 2010년 뉴델리에서 영연방경기대회가 열리기 전에도 비슷한 현상이 있었다고 한다.
영연방경기대회(커먼웰스 게임)은 영연방국가들이 참가하는 종합경기대회로 올림픽과 비슷한 경기가 열린다.
인도 정부는 외국 손님들이 보기에 민망할 것으로 생각되는 것들을 치우거나 감추는 것이다. 2010년 당시에는 뉴델리 도심에 있던 소와 개들도 대거 사라졌다.
또 곳곳에 대형 국기가 게양돼 있었다.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 정부가 독립기념일(8월 15일)을 맞아 13일부터 15일까지 '집집마다 국기 게양'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는 것이었다. 인도 건국의 아버지 마하트마 간디 등의 독립운동 덕분에 탄생한 인도 공화국을 자랑스럽게 여긴다는 의미다.
집에서 20km 거리에 있는 '세인트 알폰사 성당'은 도착했다. 성당은 별로 변한 게 없었다. 미사가 거의 끝나는 시점이어서 급히 성당 안으로 들어갔다. 미사 후 성당에서 3.7km 떨어진 중식 레스토랑에 가서 신부님, 형제 자매님들과 함께 점심을 먹었다. 2014년 7월초 임기를 마치고 떠난 이후 멀어진 신자들과의 사이를 메우는 시간이 됐다.
점심 식사는 신부님과 형제 자매, 어린이 등 총 10명이 함께 했다. 잠시 '서열'을 따지고 보니 내가 두번째 연장자였다. 첫 임기 때는 '중참' 정도였다. 이제는 웬만한 자리에 가면 이렇듯 연장자에 속하게 될 것이다. 그에 걸맞은 처신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천교구 출신인 신부님은 내가 첫 임기 때 계셨던 신부님의 신학교 3년 후배라며 선배 신부를 잘 안다고 했다. 그 선배 신부님은 소탈하면서 활달한 성품이어서 술도 자주 마셨고 우리 집 아이들과도 관계가 좋았다. 화제는 아이들, 보험, 학교 이야기 등 다양했다. 2시간여의 친교 시간이 금세 흘렀다.
[2023년 8월 14일(월)]
팬카드 신청과 관련해 한국의 거래은행에서 전자공증을 받아 bank account statement 를 받기로 했다가 실패했다. 법무부 전자공증시스템을 통한 공증을 받아야 해서 법무법인에 공증을 신청했지만 반응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한 가지 느낀 게 있다. 인도가 만든 사이트에 입력하기가 어렵다고 느꼈고, 한국은 적어도 그렇지 않을 것으로 생각해왔다. 하지만 한국도 인도와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그동안 나는 은행 볼일이나 각종 사이트에 가입해 뭔가를 하는 것에 대해 스스로 어렵게 여겼고 엄두를 내지 못해왔다. 앞으로는 적극적으로 들이대야겠다는 '오기'가 생겨났다.
기사를 쓴 후 노트북을 들고 집에서 1km 남짓 떨어진 '굽타 아케이드' 2층에 찾아갔다. 2층에는 컴퓨터로 서류를 입력하거나 출력하는 일을 하는 업소가 있었기 때문이다. 도착해 보니 손님 두 명이 있었다. IT 시대 '대서방' 역할을 하는 곳이다.
하지만 젊은 직원은 힌디어만 구사했다. 영어할 줄 아는 사장은 마침 보이지 않았다. 내가 이 곳을 찾은 것은 인도 정부의 언론공보국(PIB) 사이트에 들어가 입력을 완료해 기자증을 받아야 하는데, 입력 도중에 막혔기 때문이었다. 혼자 노트북을 꺼내 그 사이트에 접속했다. 그런데 로그인이 돼 살짝 놀랐다.
이어 기존에 막혔던 부분에 이르러 작업하다가 직원의 도움을 받았다. 연도, 월, 날짜를 입력하는 부분이 있었는데, 연도, 월, 날짜 순으로 입력해야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것이었다. 인도인이 설계한 사이트에서 인도인들처럼 생각해야만 작업이 잘 이뤄질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도에 나오면 이런 일을 혼자 해내야 한다. 이래저래 신경 써야할 게 많아 인도에 다시 나오는 것에 대해 많이 고민도 했다. 결국 인도에 나왔으니 생존해야 하는 일만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