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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금 사용 않는 인도 사회

by 유창엽

[2023년 8월 11일(금)]

오늘은 부부동반으로 뉴델리 도심에 자리한 하얏트 리젠시 호텔에서 지인과 점심을 함께 했다. 지인은 인도 델리대와 네루대를 거쳐 지금은 지미아대에서 한국학을 가르치는 교수다. 인도에 온지 약 40년 되신 분이다.

내가 인도를 떠난 2014년 이후 처음 만난 것이다. 만 9년만이다. 이탈리안 레스토랑에서 만나 1시간 30분여간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아이들이 어떻게 됐는지, 인도가 어떻게 변했는지 등에 관해서였다.

지인 부부는 이렇게 두번째로 인도에 왔는데, 인도가 어떻게 변했는지에 대해 물었다. 디지털 부문에서 많이 바뀌었고 바뀌는 중인데 가난한 이들이 여전히 많고 소와 개가 거리를 돌아다니는 등 바뀌지 않은 것도 많다고 답했다.

아내는 구체적으로 답했다. 결제수단이 많이 바뀌었고 우리나라가 김영삼 대통령 시절 금융실명제를 하면서 바뀌는 과정과 비슷한 것 같다고 했다.

지인은 인도가 많이 바뀌었다고 했다. 길거리 상인도 최근 등장한 디지털 결제수단 페이티엠(paytm)을 이용하는 등 현금을 사용하지 않는 시대로 접어들었다고 했다. 오는 9월이면 2천루피짜리 지폐가 사라지고 나렌드라 모디 총리의 정부가 집에 일정 금액의 돈을 두지 말라는 내용의 입법도 추진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까지 했다. 그는 내년 총선을 앞두고 부패를 방지하기 위한 움직임으로 평가하기도 했다.

지인은 인도에 '지한파'를 육성하면 좋겠다는 지론도 펼쳤다. 특히 일본은 인도 곳곳에 투자나 원조를 해왔다고 했다. 그러나 한국은 그렇지 못한 상황이란다. 한국에서는 인도의 중요성을 언급은 하는데 '언급'에 그칠 뿐일 경우가 많다는 일각의 지적을 염두에 둔 듯했다.

뉴델리의 공중 화장실.png 뉴델리의 한 공중화장실

인도는 또 일본에 많은 육체노동자를 보내 돈벌이를 하게 하지만 한국에는 전문직만 보낸다고 했다. 왜? 인도가 '대국'이란 자존심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한국이라는 소국에 인도 국민을 보내 육체노동을 시킬 수는 없다는 그런 자존심.

모디 총리에 대한 평가도 나왔다. 지인은 그가 언론에 민감하고 그래서 언론을 잘 이용하는 인물이란다. 인도 북서부 구자라트 주총리 시절 한국을 방문해 한국식 개발 내지 발전 방식을 잘 이해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가 새마을운동에 대해서도 잘 안다고 했다. 모디 총리의 인도는 민주주의 국가라는 것을 겉으로 잘 보여주지만 속으로는 민주주의와는 동떨어진 부분도 있다는 평가가 나왔다.

그럼에도 많은 국민이 모디 총리를 좋아한다고 지인은 말했다. 사실 모디에 대적할 인물이 없다고 했다. 한국인들은 인도의 여러 면 가운데 감춰진 면을 잘 봐야 하는 데 그러지 않아 걱정이라는 말도 나왔다.


[2023년 8월 12일(토)]

팬(PAN, 소득세 번호) 카드 발급 때문에 짜증 나는 하루였다. 지난 1일 회계사(chartered accountant)를 통해 팬카드를 신청했다. 당시 회계사는 10일 안에 팬카드가 나온다고 말했다. 그런데 '은행계좌증명서'(Bank Account Statement)를 제출하지 않아 팬카드가 아직 나오지 않았다.

이 부분에 대한 회계사의 설명을 들고서 이틀 전 한국의 거래은행 지점 직원에게 전화를 시도했다가 실패했다. 그래서 회사 인사부 직원에게 전화를 걸어 상황을 설명하고, 내 거래은행 지점의 직원에게 상황을 설명해달라고 부탁했다. 이후 서류를 기다리고 있다.

이런 와중에 거래은행 온라인 사이트에 들어가 회계사가 말한 '내 이름, 은행 표시, 내 한국 주소'가 적힌 임의의 서류를 떼려고 했다. 잔액증명서라는 것인데, 이것이라도 제출하라고 회계사에 연락했으나 결국 실패했다. 팬카드 센터에서 적합하지 않다는 서류여서 신청 절차가 보류됐다는 문자 메시지가 오후에 내 휴대전화로 왔다.

금융거래 운운하는 상황 자체에 내가 비이성적으로 짜증내며 대했던 게 문제의 근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 나름대로는 인도 당국이 개인의 금융정보를 요구하는 게 지나치다는 느낌이 들었던 것이다.

뉴델리 거리의 흰소.png 뉴델리 거리의 소들

뉴델리에 와서 외국인으로 살아가는 데 불편한 게 있다. 인도 정부가 '디지털라이제이션'이라고 해서 모든 신청 및 승인 절차를 온라인으로 바꿨다. 부패를 막기 위한 조치란다. 그런데 온라인 신청이 잘 안된다.

이를테면 기자증 신청도 시도해 몇단계는 통과했지만 중도에 막혔다. 이럴 경우 왜 중단됐는지에 대한 설명을 해주면 좋겠는데 아무런 설명도 없다. 공황상태에 빠지게 한다.

팬카드 온라인 신청은 엄두도 못냈다. 어디서 어떻게 신청하는지도 몰랐다. 호텔 매니저의 도움으로 회계사를 소개받아 겨우 신청절차를 진행하게 된 것이다.

팬카드를 신청하게 된 계기는 우선 뉴델리내 거래은행 지점에서 계좌를 개설할 때도 팬카드 사본 제출 요구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후 자동차 구입을 위해 기아차 쇼룸에 갔더니 그 곳 딜러도 팬카드가 있어야 구입이 가능하다고 했다.

또 인도 외무부 직원이 비자연장 온라인 신청을 하라고 해서 그렇게 하던 중 또 팬카드 사본 입력 부분이 등장했다.

결론적으로 보면 팬카드 신청과정에서 요구하는 Bank Account Statement도 구체적인 샘플이 이러저러하다는 식으로 회계사가 알려줬더라면, 이렇게 헤매지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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