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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리 되는 것도 있는 인도

명함 주문 이틀만에 전달 받아...포스코 제철소 건립사업은 끝내 불발

by 유창엽

[2023년 8월 19일(토)]

오전에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걸려왔다. 뉴델리에 도착해 인도 번호로 휴대전화를 사용하면서 자주 겪는 일이다. 휴대전화에는 '잠재적 사기전화'니 하면서 걸러주는 기능도 있다. 받아봤더니 명함 제작 업소에서 걸려온 것이었다.

업소 사장은 이틀 전 내가 방문해 주문했을 당시 '내일 명함이 만들어지면 전화를 주겠다'고 했다. 사장이 말한 대로 하루 만에 명함 제작을 마친 것은 아니고, 이틀 만이지만 스피드와 가격에 놀랐다. 100장에 250루피이고, 한 면만 사용한 영문판이다.

대기 중인 운전사에게 돈을 쥐어주며 그 업소에 가서 명함을 받아오라고 지시했다. 집에서 1km 남짓한 거리에 있는 업소다. 받아보니 신기할 정도로 잘 만들었다. 앞으로도 필요하면 이 업소를 이용해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쓰리에스 몰.jpg 인도 뉴델리 내 한 몰

오전은 기사를 쓰고 오후에는 DLF몰 노이다 부근의 에어텔 스토어에 갔다. 에어텔 사이트에 왜 내 번호로 세차례 지불한 것으로 뜨는지 물어보기 위해서였다. 문의 결과 내가 지난 7월 25일 에어텔 스트어에 가서 가족 플랜을 선택하면서 아내 휴대전화와 휴대용 공유기를 가족 플랜 구성원으로 묶어 놓았기 때문이라고 했다.

명의자 본인 외에 가족 구성원 세 명까지 묶어, 이들 가족 3명이 공짜로 이용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게 가족 플랜이란다. 세 차례 같은 금액을 낸 것으로 뜨는 것은, 내가 대표로 한번 납부했다는 의미일 뿐이라고 설명해줬다. 가족 플랜은 '명의자'가 매월 정해진 금액을 한번 내면 된다.

이런 일을 처음 겪어 혼란스러웠다. 에어텔 직원으로서는 아무것도 아닌 것일지 모르겠지만.


[2023년 8월 20일(일)]

뉴델리에 도착한 이후 주일 미사를 처음으로 제대로 봤다. 오전 10시 40분에 차로 집에서 출발해 성당에 도착하니 11시 30분 미사 시작 직전이었다.

2014년 7월 뉴델리 첫 근무를 마치고 떠날 즈음 주일 미사 때 가족 전체가 앞으로 나가 작별인사를 한 일이 생각났다. 직전 주일에는 미사 종료시점에 성당에 도착, 뒷좌석에 앉아 제대로 집중하지 못했다. 하지만 오늘은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바라보며 제대로 미사에 참례했다.

미사 후 곧장 떠나지 않고 교우들과 어울리며 이야기를 나눴다. 인도에서 외국인으로 살아가며 느끼는 고충 이야기도 나왔다. 한 형제님은 외국인 등록을 못해 한달 째 휴대전화 사용이 중지된 상태라고 말하기도 했다. 나도 그런 상황에 직면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도 몰 내 채소 코너.jpg 뉴델리 몰의 채소 코너

또 다른 형제님 말로는 2008년 뭄바이에서 발생한 테러 사건 후 인도 내무부가 외국인 등록을 더욱 까다롭게 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위험한 사람들을 걸러내겠다는 조치로 보인다. 하지만 일을 빨리 처리하고 싶은 이들이 담당 공무원들에게 뒷돈을 주게 되는 구조가 된 측면도 있다고 했다.

포스코가 인도 동부 오디샤주에서 일관제철소를 건립하려다가 수년 만에 최종 철수하게 된 뒷이야기도 나왔다. 오디샤 주민들이 '후손들의 먹거리'를 마련하게 됐다는 이야기를 해 제철소 건립 승인이 거의 성사될 무렵 포스코가 손을 뗐다고 한다.

당시 인도 주재 한국대사와 인도 현장의 포스코 직원들은 사업을 진행해야 한다는 입장이었으나 포스코 본사는 재무구조 개선 등을 명목으로 들어 사업을 접었다고 한다. 만약 사업을 그대로 진행했더라면 지금쯤 성과를 보기 시작했을 것이라는 관측도 나왔다.

포스코 사업진행과 관련, 한국에서는 잘될 것이라는 현장과 동떨어진 기사가 많이 나왔다고 한다. 이명박, 박근혜 대통령이 차례로 인도를 방문했을 때 인도 당국은 제철소 건립 승인을 금방 해줄 것처럼 이야기한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실제로는 주정부 말단 공무원부터 뒷돈을 집어줘야 하는 구조, 환경운동 단체들의 끈질긴 반대 등 어려움이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점은 지난번 임기 때 필자도 느꼈다. 인도에 나온 한국인 개인이나 기업은 결코 쉽지 않은 환경 속에 살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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