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9월 29일(금)]
추석이다. 인도에 살다보니 실감이 나지 않는다. 인도에 두번째로 와서 처음 맞는 추석이다. 어제에 이어 연휴 이틀차 근무를 했다.
새벽에 일어나 한국시간 오전 9시에 맞춰 형과 동생에게 카톡 보이스톡을 시도했지만 차례를 마치고서 바빠서인지 받지를 않았다.
하는 수 없이 동서 형님에게 안부 전화를 했다. 신호음 몇차례만에 바로 받으셨다. 몇 마디 인사말을 나누고서 끊었다. 이어 처숙부에게도 전화를 시도했으나 여의치 않았다.
아버지를 비롯한 친가 쪽하고는 조깅 중에 동생이 걸어온 카톡 보이스톡을 통해 소통했다. 여전한 목소리에 다들 잘 지내고 있다고 했다. 걱정하지 말고 더운 날씨에 몸조심하라고 했다.
인도를 겪어보지 않은 이들은 한결같이 인도가 더운 나라라는 생각만 하는 것 같다. 나 역시 인도에 처음 나온 2011년 즈음 인도 기후 등을 알게 됐을 뿐이었다.
인도 북부지역을 기준으로 기온을 설명하면, 6월 말 기온은 연중 절정에 올라 섭씨 50도를 육박한다. 이어 7월부터 3개월간 몬순(우기)에 접어들면서 기온은 서서히 하강곡선을 그려 10월부터는 한국의 가을 날씨와 비슷해 진다. 이어 11월부터 이듬해 2월까지는 인도의 겨울로 아침 최저가 10도 안팎, 낮 최고가 20도 안팎. 다시 서서히 기온이 오르기 시작해 6월 말 절정에 치닫는다.
인도에 대한 한국인의 선입견과 한국에 대한 인도인의 선입견을 없애기는 쉽지 않은 과제인 듯하다. 언론사 특파원인 나로서는 그저 인도 소식을 지속해 써주는 수밖에 없는 것 같다.
오늘 아침 조깅 코스는 야무나강을 따라 노이다 쪽으로 난 자전거 길이었다. 'NOIDA'라는 안내 표지석이 나오는 지점까지 가서 오른쪽으로 꺾어 뛰었다. 소똥이 곳곳에 있는 차도였다. 소똥을 피하느라 신경을 썼지만, 조깅 코스로는 그나마 좋은 편이었다.
[2023년 9월 30일(토)]
추석 연휴 사흘째인 오늘부터 나흘간 쉰다. 오랜만에 연달아 쉬는 셈이다. 휴대전화를 통해 기사를 보지 않으려 애써 봤지만 뉴스에 중독된 탓인지 잘 되지 않았다.
오전 10시 30분이 넘어서 집에서 2.8km 떨어진 힌두교 사원 악샤르담으로 향했다. 힌두교 사원 규모로는 세계 최대라고 한다. 오전 11시도 안돼 도착했다. 널찍한 주차장에는 아직 차들이 많이 주차돼 있지 않았다. 사원을 관람할 때 카메라와 휴대전화는 지닐 수 없다는 안내방송이 계속 나왔다.
기온은 벌써 섭씨 30도를 웃돌았다. 아내는 우산까지 쓰고 갔다. 우리는 입장 절차를 따르려고 그냥 입구로 갔다. 소지 가능한 품목과 그렇지 않은 품목이 그림으로 안내돼 있었다.
조그마한 소지품 제출증을 받고 제출 공간으로 가서 작성했다. 하지만 아내가 운전사를 불러 우산, 휴대전화, 가방 등을 맡기자고 해 그렇게 하기로 했다.소지품 제출증 작성을 중단했다. 그러고는 운전사에게 연락해서 중도에 만나 우산 등을 건넸다. 다만 지갑과 물 등을 휴대할 수 있었다.
다시 입구로 가서 검문대를 통과했다. 뒤에 있는 인도인 젊은 친구가 내 몸에 너무 바짝 붙어 와 은근히 불쾌했다. 검문대 입구에는 사회적 거리 6피트 유지하라고 돼 있었다. 누구도 이에 대해 신경 쓰지 않는 듯했다.
경비원들도 그런 것 따위는 신경 쓰지 않았다. 공항 검색에서 하듯 벨트까지 빼고 검색대에 섰다. 테러방지를 위한 조치인 듯했다. 전날 피키스탄의 한 이슬람 행사장에서 자폭테러가 있었기에 검색이 실감 나게 다가왔다.
파키스탄 테러단체가 인도 연방의회에서, 뭄바이 호텔에서 테러하는 것 등을 보고서 인도 당국은 테러방지에 더욱 신경 쓰는 상황이다. 인도에 사는 사람들은 내외국인 할 것없이 그만큼 힘들어졌다. 공공시설이란 곳에는 모두 검색이 철저히 이뤄진다.
나는 여권을 지참하지 않아 입장 과정에서 거부되면 그냥 거부당하기로 했다. 그런데 신분증을 보자는 말은 전혀 없었다.
1907년 완공된 악샤르담은 정원과 본관 건물로 돼 있었다. 악샤르담 구경은 지난 번 임기 때 한번 한 데 이어 이번이 두 번째다. 신발을 맡기고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건물 내 정교한 조각들에 입을 다물 수 없었다.
과거 방문 때 났던 지독한 발 냄새는 거의 나지 않았다. 하지만 냄새에 민감한 아내는 얼마 지나지 않아 건물 밖에 나가 있겠다며 나갔다. 나는 서둘러 그림 설명 등을 보고 나왔다.
그림 설명은 악샤르담에 모시는 힌두교 지도자에 관한 것이었다. 바그완 스와미나라얀(1781∼1830)이란 인물이 10세 때 부모를 여읜 뒤 출가해 1천200km의 거리를 여행하면서 고행해 득도하고 지도자로 등장했다는 것이다.
지도자로서 사람들에게 순수한 삶을 살라고 가르치고 여성도 교육받을 것을 강조하는 등 인도 사회를 새롭게 변화시키는 데 기여했다는 것이다. 후계자는 현재 6대째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