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말엔 생수도 없었다는 인도

by 유창엽

[2023년 11월 7일(화)]

오랜만에 현장 취재를 했다. 취재 대상은 ITC 마우리아 호텔에서 열린 한국무역협회와 인도산업협회(CII) 주최 양국간 비즈니스파트너십 포럼이었다.

양국 주요 인사들이 개회사와 환영사, 축사를 하는 데 1시간 이상 걸렸다. 계획상으로는 45분으로 잡혀 있었다. 사진도 찍고 참석한 주요 인사들의 한국어 직책을 확인했다. 개회사 등에서 특정 팩트를 부각할 것도 없었다.

간단한 스트레이트 기사로 처리하고 점심을 먹었다. 식사 후 떠나면서 휴대전화를 확인해보니 한국무역협회 뉴델리 지사 측에서 전화가 여러 통 걸려와 있었다.

포럼 시작 직전 휴대전화를 무음으로 해놓아 전화를 못받은 것이었다. 지사 측과 통화해 보니 '본사에서 이 기사가 다음날 오전 6시 엠바고 걸린 것인데 기사를 내려줄 수 있느냐'고 했다.

새겨진 나무 20250616_160146495.png

나로선 황당한 요구였다. 뉴스통신 기자가 현장에 와서 취재해 송고한 것이어서 내려줄 수 없다고 답해줬다. 엠바고 걸린 사안이라면 당초 내가 취재할 필요도 없었던 것이었다. 주최 측은 엠바고 걸린 것이라고 내게 알려주지도 않았다.

협회 출입기자들과 보조를 맞추며 일하는 협회 홍보팀 입장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특파원이 나가 있는 외국 도시에서 일어난 행사 기사에 대해서도 홍보팀이 이렇게 대처하는 것을 보니 한심스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어 거래은행 뉴델리 지점에 들러 직불카드 사용 불가 이유를 문의했다. 그랬더니 은행 측 시스템 업데 과정에서 PIN 재설정을 하면서 내가 실수로 카드사용을 영구정지해놓은 것이라고 설명해줬다.

직불카드 발급을 다시 신청했다. 1주일 정도 소요되고 수령하러 오라고 했다. 은행 측의 모바일 앱을 통한 이체방식도 문의했다. 2랙(lakh, 10을 의미) 미만, 2랙 이상, 금액 무제한 등 3가지 실시간 이체방식이 있다는 답이 돌아왔다.

[2023년 11월 8일(수)]

점심을 한국인 교수인 A씨 부부와 함께 했다. 이탈리아 문화원 부속 디바 레스토랑에서 모셨다. 부부 동반 자리였다.

1988년 당시 사회주의식으로 국가가 운영되던 인도에 와서 37년째 살고 있다는 A씨는 2011년 첫 임기 때 만난 분이다. 네루대에서 석박사 학위를 하고 네루대, 델리대 교수를 지낸 뒤 얼마 전 자미아대로 옮겼다. 인도의 겉과 속을 잘 알고 계시는 분이다.

자신이 인도에 처음 왔을 때 열악했던 상황도 설명했다. 생수, 맥도날드 가게도 없었다고 한다. 1991년 인도가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을 받으면서 개방한 것이 인도에는 큰 도움이 돼 오늘날의 인도, 국내총생산(GDP) 규모 세계 5위의 나라가 됐다고 말했다.

염소들 20250616_160158003.png 야무나강 둔치에 있는 한 농가의 염소들

오늘날 대형 건물이 즐비하고 한국 주재원이 나오면 선호하는 지역인 구르가온(구루그람)은 옛날에 마적 서브카스트(sub caste)가 살고 해당지역으로 거저 살러 오라고 해도 가지 않았던 지역이었다고 한다. 마적 떼가 언제든지 나타나 다른 사람들의 재산을 빼앗아갈 수 있었던 지역이었다.

인디라 간디 개방대학도 소개하셨다. 온라인 강의로만 석사학위를 할 수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제는 '투 잡' 시대라고 말했다. 자신은 한국어 공부하는 제자들에게 반드시 다른 전공, 이를테면 경영학 같은 것도 함께 공부해 스펙을 쌓으라고 조언한다고도 말했다. 인생은 30-30-30으로 나이를 나눠 살아야 한다는 누군가의 말도 소개해주셨다.

점심 시간이 질문을 주고받는 강의시간처럼 됐다. 낮 12시 30분에 만나 금세 오후 2시가 넘었다.

인도라는 사회를 알면 알수록 재미있을 것이다. 좋은 점도 나쁜 점도 계속 보일 것이다. 그러면 인도를 있는 그대로 보고 인도 속에 사는 자신도 객관화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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