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모두 믿는 것을 현실로 만들어내는 재주가 있다. 그것이 불행일지라도
홍정은, 홍미란의 작가의 넷플릭스 시리즈 <이 사랑 통역 되나요?> "서로 다른 맥락과 언어로 소통하는 두 사람이 사랑을 만들어가는 이야기"라고 정의하기엔 아까운 드라마다. 왜 아까운지에 대해 적어두고 싶다.
드라마를 보기 전까지 나는 아주 진부하고 평범한 러브스토리일 것이라 짐작했다. 드라마를 보게 된 것도 그냥 릴스에 뜬 영상 속 둘의 모습이 너무 잘 어울려서... 밥 친구로 소소하게 시작한 것뿐이었다. (땡큐 빠더너스)
고윤정의 아름다움과 김선호의 섬세한 연기는 물론이고 멋진 해외 로케이션과 연출은 이 드라마를 풍성하게 만들어주었다. 그렇지만 내가 주목하고 있는 이 드라마의 특별함은 '도라미'다. 혹자는 도라미라는 캐릭터가 이 드라마에서 뜬금없는 공포스릴러 분위기를 자아낸다고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사람조차 자신의 삶을 진지하게 들여다본다면 자신에게도 '도라미'가 있을 거라고, 그래서 이 드라마가 다른 시각으로 와닿을 거라고 말해주고 싶다.
'도라미'는 여자주인공 차무희가 연기했던 작품 속 캐릭터이다. 사고로 한참을 누워있다 일어나 보니 차무희(여자주인공, 고윤정)는 이 '도라미'라는 캐릭터로 대중에게 사랑을 받아 스타가 되었다. 탄탄대로가 펼쳐져야 할 차무희에게 갑자기 자신이 연기했던 캐릭터 '도라미'의 환영이 보이기 시작한다. 특히 불안할 때마다 등장해 이렇게 말한다.
'너는 사실 망할 거야!'
'너는 이 자리에 있을 받을 자격이 없어!'
'다들 금방 돌아설 거야!'
'아무도 너를 사랑하지 않아!'
차무희에게 '도라미'는 기괴하고, 예측 불가하고, 두려운 존재다. 환영과 환청, 심지어는 다중인격으로 행동하는 차무희는 병증이 심각해 보인다.
근데 이 현상이 차무희에게 진짜 문제가 되는 것은 그 뒤의 일이다. 매번 차무희(주인공) 도라미(환영)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불안하고 초조해하면 정말 그 걱정이 현실이 된다.
'이 일을 놓칠 거야, 나는 사실 이렇게 스타가 될 가격이 없어'라고 생각하니 그 불안해하는 모습을 보고 프로그램에서 짤리고(짤릴 뻔하고)
'그 남자는 내 곁을 떠날 거야. 나는 사랑받을 수 없어.'라고 믿기 때문에 자신이 먼저 도망치고, 남자는 좋아하던 마음을 접을 수밖에 없었다.
우리는 믿는 것을 현실로 만드는 재주가 있다. 우주는 나쁜 건지, 좋은 건지 판단하지 않고 믿는 것을 현실로 만들어준다. 우주니 뭐니 하는 단어를 다 빼고 이야기해도 똑같다.
우리는 믿는 대로 매 순간 행동하고, 행동은 쌓여 현실을 만든다.
우리는 모두 머릿속에 도라미를 가지고 산다. 꿈꾸고 있던 큰 기회를 얻었을 때 '이걸 내가 진짜 얻을 자격이 있나?' '금방 놓칠까 봐 무서워...' 하는 생각이 무의식적으로 피어오른다. 그리고 최선을 다해 일하는 것 대신 망설이고 불안해하며 시간과 에너지를 허비한다. 그 결과로? 진짜 그 기회를 놓친다.
아주 취향저격 이성이 나에게 다가와 사귀게 되었다면? '이 여자가 떠나가면 어떡하지... 나에게 금방 실망하면 어쩌지, 다른 사람에게 흔들리면 어떡하지...' 하는 생각에 사로잡혀 더 과하게 행동해 상대방을 곤란하게 하거나 있던 매력도 떨어뜨린다. 그리고 진짜로 그 이성의 마음이 바뀌게 된다.
그러니 우리는 결정하면 된다. 어떤 것을 믿을 것인지.
도라미가 어떤 과거의 경험으로부터 왔는지, 무엇을 상징하는지 역사도 이유도 많겠지만 결국 중요한 건 이거 하나다.
도라미는 차무희의 진정한 행복을 바라는 게 아니다. 위협받지 않고 상처받지 않고 안온한 상태만을 원한다. 사랑받을 수 있다는 기대, 성공할 거라는 기대를 다 포기해 버린 상태. 이 도라미의 말도 일리가 있지만, 외롭고 불행한 차무희의 자리에 머무르겠지. 도라미의 말에 동의하고 살아가는 것 또한 옳고 그름이 없는 자신의 선택이다.
그치만 나는 기왕이면 아주 째지게 기분 좋을 것들을 믿으며 살고 싶다. 나와 비슷한 사람이 있다면, 우리는 귓가에 들리는 도라미의 목소리를 무시하고, 믿고 싶은 것에 집중해야 한다. 차무희가 당당하게 원하는 것을 말하고, 꿈꾸던 일을 하고, 사랑하는 사람과 사랑하는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