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초년생이었던 20대의 나는 참 겁이 없는 사람이었다.
어린 나이부터 시작된 관리자의 자리는. 경험이 적다는 헛점에도 끝내 버텨내고 마는 고집과 강단이 있었다. 지금 나이에 되돌아보면 무모했고 한심했다. 그래도 외줄타기처럼 위태로운 그때의 내가 배짱을 가질수있었던 것은 딱하나 젊음이었다.
친구도 원하면 그때그때 여러사람을 번갈아 사궜다.
오늘이 싫으면 내일 다른사람을. 애인이 아니어도 호감이 없으면 절대 친구를 맺지 않았다.
그때 딱 내 입맛에 도는 어린 동생들이 둘 있었다. 나는 잔소리 많은 아버지에 질렸고 한명은 헤어진 남자에 질렸고 한명은 보수적인 아버지에 질렸다. 우리는 술도 꽤 많이 먹고 꽤많은 추억을 쌓았다.
우리는 그저 즐겁고 즐겁기에 만나고 또 만났다.
결혼 적령기가 되어 나는 성질 머리가 좋지 않다는 자기 객관화로 비혼을 택했다.
동생 중 한명이 저보다 한살 많은 남자를 만나 시간을 쪼개니 우리와의 만남은 서서히 줄었다.
나머지 한명과 절친이 되어 팔도를 놀러댕길때 그동안 그 아이는 남자와 아이를 낳고 가정을 꾸렸다.
세월이 지나 독박육아를 끝낸 녀석이 복직하고 우리는 다시 만났다.
함께 이던 20대. 그리고 각자였던 30대. 그리고 다시 40대. 절대 그때의 모습과 체력은 아니었으나.
만나면 항상 지난 이야기를 한다. 똑같은 이야기를 똑같이. 지겹지도 않게. 매번.
나머지 한명도 늦은 결혼을 하여 늦은 자식을 얻었다.
궤도가 달라지니 일년에 한번을 만나기 어려운 사이가 되었다.
무엇보다 공감할수없는 여러 상황들에 대한 이해가 가끔은 피곤했다.
우리는 어제와 같고 내일 달라질 것이 없다.
너는 너대로 나는 나대로 인생을 살다보니. 소원해지는것엔 왕도가 없지만
예전과 같은 열정은 아니니 아쉬워도 서운함은 없다.
사람은 과거를 사는것이 아니고. 당신의 안방 촛침위에서 현재를 산다.
그래도 녀석들이 시계약이 되어주니 시간은 멈추지 않고 잘도 가는것같다.
우정이라는 것의 정의는 딱히 없다고 생각한다.
다만
누군가 나의 모태가 되어주는 기반에서 당신을 벌하지 아니하고 시기하지 아니하며
당신의 불행보다 행복에 기꺼이 동참해주는 이가 있다면. 그 시간이 길건 짧건 우정이 아닐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