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의 변화
일요일 아침, 어느 골목을 걸어가던 중 을씨년스러운 풍경에 걸음을 잠시 멈추었다. 금방이라도 쓰러져갈 듯한 모습임에도 위험하다는 출입제한 표시는 없었다. 시장이라는 간판이 나타내주듯, 한 때 이 동네에서 물건을 사고파는 중심적인 역할을 했던 장소인 듯했다. 호기심으로 들어가 보았다. 슬레이트 지붕사이로 들어오는 빛 때문에 그나마 알아볼 수 있을 정도. 굳게 닫힌 녹슨 셧터문들이 보인다. 장사를 하는 흔적은 전혀 찾아볼 수 없다. 내가 어릴때즘, 동네 골목에 이러한 시장이 형성된 것이 기억난다. 다른 시장과 경쟁하기 위해 초대가수도 부르고, 경품추첨도 해서 동네 사람들을 끌어모았다. 아마 그 시절의 시장풍경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십 수년이 지났다.
비 올 때, 추울 때, 더울 때에도 어두워질 시간이 되면 저녁반찬을 마련하기 위해 모였던 시장이 조금씩 장사가 안된다는 뉴스가 나오기 시작했다. 집집마다 차를 소유하게 되면서 주말에는 대형마트에 가서 한꺼번에 장을 봐오는 것이 유행이 될 무렵이었다. 금요일저녁부터 주말오후면 마트에 주차하기 위해 줄줄이 차량행렬을 이루는 것이 당연한 풍경이었다. 급기야 시장 소비를 진작시키기 위해 전통시장 상품권을 나눠주고, 대형마트는 격일제로 주말마다 강제휴업을 하게 했다. 영원히 이어질 것 같던 마트의 흥행도 지방도시부터 하나씩 문을 닫기 시작하더니 '홈플러스'는 올해 기업회생절차에 신청하기까지 했다.
대형마트를 힘들게 한 것은 동네 구석구석에 있는 편의점과 집집마다 배송되는 전자상거래 업체의 서비스 때문인 것 같다. 주차 때문에, 카트를 찾느라, 그리고 수많은 물건 중에 사고 싶은 것만 찾는 숨바꼭질 같은 수고를 아낄 수 있다. 종이박스에 가득 물건을 실어 무겁게 집까지 나르는 수고도 더 이상 안 해도 된다. 집 드나들 때, 클릭 몇 번으로 쉽게 구입할 수 있기 때문이다. 편의점 물건은 비싸다는 생각이 1+1(하나 사면 하나 더 주는 것)로 바꾸어 놓았고, 전자상거래의 느린 배송이 저녁에 주문하면 아침에 배달되는 강점으로 돌려놓았다.
수 백 년간 이어져오던 시장의 모습이 바뀌어 간다. 그것도 한 세대 남짓한 시간에 걸쳐 아주 빠르게. 편의점이라는 가까운 시장, 내 손 안의 간편한 전자시장이 지금은 대세다. 또 시간이 지나면 바뀔지 모를 일이다. 사고파는 개념은 바뀌지 않는다 하더라도 장소와 방법은 사회발전에 따라 바뀔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오늘 어떤 시장으로 변화될지 모를 일이다.
2025. 3. 30. 동네를 걷다 마주친 시장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