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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세협상과 MASGA, 그리고 리버티 호에 대한 소고

해양강국을 꿈꾸며

오늘 미국과의 관세협상이 큰 틀에서 완료가 되었다. 가장 핵심적인 내용은 우리가 3,500억 달러(약 480조 원)의 규모로 미국에 투자한다는 내용이다. 이 중 1,500억 달러는 조선업 협력 펀드로 이루어진다고 한다. 어떤 식으로 전개될지 지켜볼 일이다. 다만 흥미로운 것은 미국이 조선업 펀드에 큰 관심을 가졌다는 사실이다. 우리가 조선 강대국임을 실감케 한다. 그런데 재미있는 사실은 미국이 제2차 세계대전 직후만 해도 최대의 조선국이었다. 그런데 80년이 지난 지금 미국은 제대로 된 조선소 하나 없다. 그 점이 미국의 관심을 끌었을 것이다.


과연, MASGA(Make America Shipbuilding Great Again, 미국 조선업을 다시 위대하게)를 이룰 수 있을까.



제2차 세계대전의 시기로 돌아가 보자. 미국은 유럽에서 치열하게 벌이고 있는 전투지원을 위해 전쟁물자 수송에 적합한 화물선을 계획 건조하게 된다. 이것이 리버티 선박(Liberty Ship)으로 이름에서 표시하듯이 자유와 연합군의 이상을 상징하고 있다. 모델명은 EC2-S-C1(Emergency Cargo, Type 2, Steam). 길이 약 135미터, 폭 약 17미터의 크기인데, 약 1만 톤의 화물을 운송할 수 있다. 엔진은 지금과는 달리 증기기관으로 운항속도는 11노트(약 20Km/h)로 느린 편이다.


이 선박은 전시상황에 비숙련 노동자도 투입되어 대량생산으로 건조하여야 하기 때문에 표준화된 선형이어야 한다. 때문에 건조기간이 매우 빨랐는데 평균 42일 만에 1척이 완성되었다고 한다. 빨리 건조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용접의 혁신이 있었다. 이전에는 철판과 철판을 볼트로 박아 고정하는 리벳(Rivet) 접합으로 건조하였지만, 리버티 선박은 용접방식이었기 때문에 대량생산이 가능했다. 따라서 1941년부터 1945년까지 약 2,710척을 건조했다고 하는데, 이는 역사상 단일 설계로 가장 많이 생산된 선박이다.


2천 여척이 넘는 선박을 하나의 조선소에서 건조할 수는 없다. 미국 전 지역 18개의 조선소에서 건조하였다고 하는데, 이는 조선소 하나당 매년 40여 척을 계속 뽑아냈다는 말이다. 세계 최대의 조선소인 울산 현대중공업이 매년 60-70여 척을 건조한다고 하니 당시, 미국 전역이 배를 짓는 망치질소리로 끊이질 않았을 것이라 짐작된다. 그런 미국이 조선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전쟁이 끝나면 2,700척이나 되는 화물선은 필요 없게 된다. 미국은 수많은 선박을 동맹국 등에 매각하는 조치를 취했는데, 상당수의 리버티 선박이 그리스로 매각되었다고 한다. 오늘날 최대 해운강국이 된 배경이다. 그 이야기는 따로 하기로 한다.


2,700척 중 2척을 우리나라도 도입하게 되었는데, 이를 대한해운공사가 운용하게 된다. 즉, 리버티 선박은 건국 이후 우리나라 최초의 대형 선박으로 동해호로 명명되었다. 식량, 건자재, 연료 등 필수 물자를 수송하는 임무를 맡게 되었는데, 특히, 한국전쟁으로 초토화된 국가 재건을 위해 해외로부터 물자를 원조받는데 핵심적인 국가자산 역할을 했다. 또한, 운항을 통해 선박 운항 기술을 습득하게 되고, 동시에 우리나라가 선박을 건조할 수 있는 배경이 되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한국전쟁 이후 제대로 된 선박이 없어 운항기술을 익히기는커녕 새로운 선박을 건조할 수 있는 기술이 어디 있었을까. 그러함에도 우리나라는 몇십여 년 만에 최대의 조선국이 되었다. 그리고 200조 원에 달하는 조선 협력펀드를 만들어 미국에 지원할 예정이라고 한다. 80여 년 전, 미국의 전시 표준선박 몇 척으로 시작된 해운과 조선의 역사가 어느새 미국의 관세협상에 사용할 정도로 크게 자라고 있었다. 너무 큰 발전에 가슴이 웅장해진다. 이순신 장군도 기뻐할 일이지 않을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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