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지사지(易地思之)’라는 한자성어가 있다. 상대방과 처지를 바꿔 생각해 보자.라는 뜻인데, 사람은 누구나 자기 입장에서 생각하고 말하기 십상이다. 조금 더 확장시켜 옛날 고부관계를 보면 안방에서 시어머니 말을 들으면 시어머니 말이 맞고, 부엌에서 며느리 말을 들으면 며느리 말이 맞는다고 한다. 모두 자신의 가치관이나 사고의 범주를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갈등이리라.
박여범 시인의 ‘배추벌레의 마음’을 보면 시인이 배추벌레의 입장이 되어 배추에게 상처를 준 일을 생각한다. 그래서 마음 가장자리가 시퍼렇다고 한다. 초록빛 배추벌레가 떠오른다. 적어도 배추벌레는 양심이 있는 벌레다. 자신이 먹은 초록의 배춧잎을 온몸으로 표시해 주니까.
요즘 연일 뉴스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는 대장동 사건이 떠오른다. 몇 명이서 정당하지 못한 돈을 꿀꺽하고도 그들의 얼굴은 변함이 없다. 모두가 오리발을 내밀고 미로 찾기를 하는 것 같은 진실은 어디에 있는 걸까.
배추벌레 한 마리도 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갉아먹어야만 했던 배추에게 상처를 주어 생각할수록 미안하다고 하는데, 그래서 마음 가장자리가 시퍼렇다고 하는데.(양향숙 시인, 서정문학 등단, 한국사진문학협회장)